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지방의회. 지난 4월1일로 개원 만 10년을 넘겼지만 아직도 제대로 정착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주민의 안전과 지역 진흥을 책임지라고 자리를 맡겨 놨더니 오히려 이를 개인 이익 차지에 악용, 많은 의원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구속되거나 재판 중에 있다. 상당수 의원들이 성실하게 봉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정 때문에 성급한 사람들은 시.군 의회를 없애라고 요구하고 있다.
◇비리에 연루된 의원들=경북도의원 이모씨는 얼마 전 공갈협박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이 밝힌 혐의 내용은 예산 편성 때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고 협박해 특정업체에 건설하도급을 주게 했다는 것.
칠곡 군의회 의장은 지난해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됐다. 성주 군의회에서는 뇌물수수 혐의로 실형 선고까지 받은 사람이 의장단에 선출되기도 했다. 이 군에서는 의원 10명 중 4명이 각종 비리로 대법원 상고심에 계류돼 있을 정도.
안동 시의회에서는 1998년 의장단 선거와 관련한 금품수수로 의장이 구속되고 11명의 의원이 입건됐었다. 울진 군의회에서도 같은 사건으로 3명이 재판에 계류 중이다. 예천.청송에서는 예산삭감 문제 등으로 군수와 싸움을 벌인 사건까지 벌어졌다. 기본 자질까지 의심케 하는 의원들이 적잖은 것.
◇한심한 의원들=청송군의 한 의원은 공무원 등과 심심찮게 싸움질을 해 '싸움대장'으로 소문났다. 군위군 의원들은 지난 4월 말 열렸던 군 장기 종합개발 계획 공청회에 "예우에 문제가 있다"며 불참했다. 영양군의 한 의원은 수해복구 공사에 압력을 행사해 자신의 친동생이 이사로 있는 건설회사에 수의계약케 했고, 또 다른 의원은 면장 재량사업비를 자신이 쓰겠다고 압력을 넣기도 했다.
포항시에서는 시의원 당선 후 특정업체 간부.고문으로 입사한 의원이 있었으며, 시청 직장협의회가 '지방의회 바로 세우기 운동'을 벌일 지경이 됐다. 군위군 의원들은 설날 떡값 명목으로 군청 간부로부터 돈을 받아 나눠 쓰고는 예산으로 충당하려다 되돌려 주는 촌극을 빚었다.
경주시의 한 의원은 농수로 정비작업을 하던 공공근로자 7명을 자기 선친 묘소로 동원, 나흘 동안이나 풀 을 뽑고 나무를 심게 해 의회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이 때문에 공무원들은 대체로 냉소적이다. 청송군청의 한 공무원은 "군의원들이 읍.면에서 발주하는 각종 공사에 개입해 업자 괴롭히기 등을 일삼고 있고, 일부 공직자들이 군의원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불이익 받는 것을 여러번 봤다"고 했다. 울릉군청의 한 공무원도 "군의원들이 예산을 갈라먹기 위해 협상까지 벌이는 것은 오랜 관행이 됐다"고 개탄했다.
◇이익 있으면 언제나 만장일치 =대부분 의원들은 자신들의 '해외 연수'에는 모두 적극적이다. 그러나 놀러 간다는 혐의가 짙은 경우가 적잖아 늘 말썽이다.
울진에서는 지난해 5월 군의원 8명이 유럽 6개국을 다녀오자 시민단체인 참여자치연대가 '외유경비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경산 시의회가 지난해 4월 집단 해외연수를 다녀온 뒤에는 시민단체들이 의회를 점거해 농성을 벌였으며, 그 결과 의원들이 일부 여행경비를 반납해 결식아동 지원금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문제가 심각하자 의원들 중에서까지 반발이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울진 주광진 군의원은 지난달 "현재 분위기로서는 도저히 의정활동을 할 수 없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예천에서는 한 의원이 "옳게 하자고 했다가 왕따 당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좋은 평가를 받는 사례=그러나 열심히 봉사하는 의원들도 적잖다. 상주 시의회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중지 촉구 결의문을 채택해 52개 기관에 보내고 봄가뭄 대책협의회를 주도했다. 의성 군의회는 안동.임하 댐 농작물 피해 조사를 추진했으며, 울릉 군의회는 독도관련 각종 결의문 채택에 재빠르게 움직였다. 문경 시의회의 청소년지방자치학교 운영 및 의원 자질 향상을 위한 초청강연 등은 조금씩 달라지는 기초의회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례들이다.
시군의회가 제자리를 못잡는 것에 대해 안동시의회 김성구(42) 의원은 "도덕적 해이와 전문성 부족 때문"이라고 진단, 별정직 전문위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영천 시의회 신국정(58) 의원은 "지방의회가 대의기구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인정하고 스스로 자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문가 의견=영남대 행정학과 김시영 교수는 의원들의 자질이 높아지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대선거구제, 의원들에 대한 활동비 지급 등도 한 방법이다. 특정 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해 당선자 모두 이수케 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미국 등지에서 지역의 중요기관들로부터 추천 받아 실시하고 있는 명예의원제 도입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것.
영진전문대 김진복 교수는 "유권자들의 의식이 낮고, 의원 자질이 떨어져 지도자가 될만한 사람들이 출마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생업에 종사한 후 오후.저녁 시간에 무보수 명예직으로 활동하는 제도가 외국에 있음을 상기시킨 김교수는 "불법자는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를 보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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