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 넣으면서 자신도 새 삶을 개척하는 사람.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 장승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하루도 쉬지 않고 장승깎기에 혼신의 힘을 쏟는 김쌍기(40)씨이다.
김씨는 혈관이 막혀 뼈가 상해 들어가는 불치의 병, 버거씨병 환자. 1988년에 발견했으니 벌써 10년도 넘는 세월. 그 사이 손.발가락 끝마디 모두와 오른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오로지 왼쪽 다리에 온 몸을 얹어 썩어 없어질 고목을 되살리려는 듯 끌과 망치를 휘두른다.
지금까지 그가 이 공원에 깎아 세운 장승은 100여개, 이웃 창녕군 이방면에도 기증했다. 지금은 부산 금정산성에 세울 장승 다듬기에 밤낮이 없다. 오광대 발상지로 탈·장승축제를 여는 덕곡면의 인터넷 홈페이지(www.tokkok.or.kr)을 통해서도 주문이 쏠쏠하다. 그런 김씨를 위해 마을 젊은이들은 좋은 재목을 구해다 주고, 노인네들도 틈틈이 찾아 와 나무를 붙잡아 주거나 돌려주며 작업을 거들고 얘기 상대가 돼 준다.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풍물패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결혼해 아들 낳고 문화 활동을 즐기던 건장한 젊은이였다. 그러다 결혼 3년만이던 1988년에 비극이 시작됐다. 몹쓸병에 걸려 고향에 돌아왔고, 아내는 아이(현재 고1)를 두고 가출했다. 삶을 포기하고 폐인처럼 살기 시작했다. 손.발가락과 다리가 상해 떨어져 나가는데 어느 누가 절망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일어 설 사람은 어떻든 일어서는 법. 율지리가 문화마을로 지정되고, 작년 8월15일엔 '탈.장승 축제'가 열리자 뭔가 느낌이 왔다. 장승깎기를 맡아 참여하고는 "아! 이것이다!"하는 영감이 벼락같이 온 몸을 훑었다. 그리고는 나무와 뒹굴기 일년. "장승 하나가 완성될 때마다 죽어 가는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게 웬일일까? 근래 들어서는 병이 진행을 멈춘 것은 물론, 새 살이 돋아나고 있는 것 아닌가?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은 "소나무 기운을 받아 좋아지는 것 같다"고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정성이 장승으로 환생, 그 영험이 몸을 낫게 하는 것일 터"라고 환호하고 있다. 016)577-0966.
합천.정광효기자 khje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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