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대우서적 주인 박순진씨

입력 2001-06-04 15:05:00

동네서점이 사라지는 요즘 대구 도심 한 가운데 '동네서점' 보다 작은 서점이 3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앙시네마 옆 대우서적. 주인 박순진(60)씨는 인근 사무실 직원들 사이에서 '대우 아줌마'로 통한다. 그에게서 책방 주인의 이미지를 찾아내기는 힘들다. 작은 몸집에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은 차라리 어린 손자와 함께 산책나선 '동네 할머니' 같다.

"그냥 책 파는 일이 좋아서…" 박씨는 남편과 함께 해오던 일을 5년 전부터 혼자 떠맡았다. 20평 남짓한 매장엔 대략 2만5천 권의 책이 빽빽하게 진열돼 있다. 대형서점처럼 맵시있게 구분해 놓지도 않았다. 그저 대충 인문사회과학, 소설, 자연과학등일 뿐이다. 그것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도 박씨의 손은 독자가 찾는 책을 금세 끄집어낸다. 아예 책이름을 외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제도권 교육을 받아 본 일이 없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 높이는 웬만한 대학생 뺨친다. 새로 들어온 책의 서문만큼은 꼼꼼히 챙겨서 읽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손님들은 신간이나 읽을 만한 책, 작가 등에 대해 책방 주인과 격의없는 대화를 나눌 기회를 덤으로 얻는다.

박씨가 매장을 찾는 손님과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손님이 뜸하기 때문. 도심의 화려한 간판들에 갇힌 작고 빛바랜 간판 탓일까, 무심한 행인은 거기 서점이 있음을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의 서점엔 단골손님들뿐이다.

"푸근해요. 제가 찾는 책을 구해 놓았는지, 제 취향에 맞는 책이 나왔는지 꼼꼼하게 알려주니까요, 한두 푼 깎아 주기도 하고요". 단골 손님들의 '대우서적 예찬론'이다. 실제로 여기서는 웬만큼 오래 전에 절판된 책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박씨는 여기 저기 전화를 내 몇 해전에 절판된 책도 결국 찾아낸다. 매장이 작아 미처 진열해두지 못한 책도 하루 반나절이면 독자 손에 쥐어진다.

"없는 책은 구해드려야지요. 그게 책방 주인이 할 일이고요" 박씨에게 그쯤의 수고는 당연한 것이었다.

박씨의 일과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책배달. 가까운 사무실 몇몇 곳에서 하루에도 몇 권씩 전화주문이 온다. 여름 햇볕과 겨울 바람 사이로 배달을 나서는 키 작은 박씨의 모습은 풍경화 같다. 그는 배달 시간(오전 11시부터 12시)엔 아예 서점 문을 닫아버린다. 어차피 단골 손님이 아니면 찾아올 손님이 없으니 걱정하고 말 것도 없다. 대구 가톨릭대와 대구교육대 도서관도 그녀의 십 수년 된 단골이다. 한 달에 한두 번, 50·60 권의 주문을 잊지 않는단다.

"잘해 준 것도 없는데, 고맙지요" 박씨는 온통 대형 서점이 거래를 독점하는 상황인데 작고 허름한 서점을 기억해주어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어느 서점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대우서적에도 특유의 '책방 향기'가 배어있다. 책방 구석구석을 느긋하게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그 향을 즐길 수 있다. 종종걸음으로 지나치는 길이라면 책방 문 앞에 서서 "○○○있어요?" 라고 물어 보라. '대우 아줌마'는 틀림없이, "있다" 혹은 "언제까지 준비해두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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