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퀴즈를 푼다, 고로 존재한다'

입력 2001-06-04 14:42:00

2인 호주여행권, 제주도여행권, 무비카메라, 오디오, 유무선전화기, 카메라, 정수기, 헬스 기구, 국내호텔 숙식권 몇장, 셀수도 없을 도서상품권, 양복 4벌….

대구 동구 불로동의 새내기 아줌마 나도향(31)씨는 이 모든 품목들을 돈 한푼 안들이고 장만했다. 각종 TV, 라디오 퀴즈프로그램에 출연해 상품으로 받았다. 그 덕에 평생 얼굴 한 번 비치기 어려운 방송에도 여러번 출연했다. 인천방송, 부산방송, 엔(N)TV 등의 퀴즈프로그램에 출연해봤고 지난 19일엔 '퀴즈정글' 예심을 잘 봐두었기 때문에 KBS 출연도 조만간 이뤄질 전망이다. SBS '도전! 퀴즈퀸'에는 두 번이나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은 예심 통과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매주 2천여명이 인터넷으로 지원하는데 여기서 150~200명 정도를 먼저 거른다. 2심 필기시험을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행운인 셈. 그리고 2심 시험을 거쳐 10명을 선발한 후 최종 인터뷰를 통해 4명을 뽑는다.

지난 3월엔 6개월 재출연 제한이 끝나자마자 출연했던 '도전! 퀴즈퀸'에서 찬스를 잘못 사용해 2등을 한 게 두고두고 후회된다. "퀴즈에서 2등은 상품 외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그는 작년 8월에도 2등을 한 적이 있어 더 아쉬웠다.

전체적으로 보면 지금까지의 성적은 꽤 괜찮은 편이다. 4월 TBC라디오에서 3연승, 작년 11월 SBS라디오 '이수경의 파워FM' 월우승, 작년 7월 엔TV 9연승…. 그러나 가끔은 1회전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도 한다. 지난 5월20일 녹화한 인천방송 퀴즈프로그램은 1문제당 5만원인 단판승부. 대구에서 10여시간 차를 타고 가서 첫 번째 문제에서 패하고 바로 돌아와야 했다. 이럴 경우 후유증이 더 심각하다. 차비가 아까워서도, 시간투자가 아까워서도 아니다. '왜 틀렸을까?' 하루종일 그 생각뿐, 분한 마음에 밥 먹는 것도 귀찮고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그럴 때는 평소에 잘 도와주던 남편도 "이젠 퀴즈 그만두라"고 말릴 정도다.

나씨가 퀴즈와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시절 매일신문'주간매일'의 낱말퍼즐을 풀면서부터였다. 나씨의 아버지가 초등학생 딸에게 낱말퍼즐을 넘겨주며 풀어보라고 한 것. 정말 밤을 새워가며 문제를 풀었다. 모르는 낱말이 나오면 두꺼운 국어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뒤졌다. 밤새운 보람이 있어 종합과자선물세트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틈틈이 낱말퍼즐을 풀어 상품을 챙겼고 고등학교땐 MBC라디오 퀴즈에 엽서로 응모한 끝에 카메라를 선물로 받았다. 대학시절엔 '퀴즈 아카데미'에 나가보는 게 소원이었다. 준비도 많이 했지만 인연이 닿지 못했다.

어른이 되고나자 주부대상 퀴즈외에는 출연할 수 있는 데가 없었다. 96년 결혼하고 나서 97년부터 본격적으로 퀴즈프로그램에 뛰어들었다. 행여 주부대상 퀴즈에 나가기위해 결혼한게 아니냐는 오해를 살까봐 이말만은 잘 하지 않는다.

나씨의 취미는 퀴즈 마니아답게 당연히 퀴즈. TV·라디오 퀴즈프로그램, ARS즉석 전화퀴즈, 경품퀴즈, 인터넷 퀴즈뿐만 아니라 낱말퍼즐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퀴즈에 몰두하는 것이 결코 상품에 눈이 멀어서가 아닙니다. 그냥 퀴즈가 좋아요. 솔직히 능력을 과시할 수도 있고 방송출연이라는 덤에다 상금까지 타게되니 더 좋잖아요"

승부욕이 강한데다 짜릿한 지적인 게임을 좋아하는 것일 뿐이다. 모르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도 적지않다. 대한민국 퀴즈왕을 꿈꾸는 나씨는 보통 하루 5, 6시간 이상 공부를 하는 노력파.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 퀴즈에도 왕도가 없다. 공부하는 것도 녹록치않다. 기출문제를 인터넷에서 찾아 보고 퀴즈 프로그램을 다시 보는 것은 기본. 시사문제에 대비하기위해 신문을 스크랩하고 상식책을 독파해야 한다. 인터넷 퀴즈동호회는 문제의 흐름을 잡는데 도움을 준다. 퀴즈동호회는 '퀴즈족(族)'들의 보금자리. 때로는 결승에서 동호회원끼리 맞붙기도 했다. 다만 서로의 실력을 알기 때문에 될수 있으면 피하려고 한다.

요즘엔 제시어만 봐도 답을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간호사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합니다"까지만 듣고도 그문제의 정답이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임을 알 정도.

나씨는 '퀴즈에 살고 퀴즈에 죽는' 프로를 꿈꾼다. '퀴즈꾼'이기보다 '퀴즈마니아'로 남기를 더 바란다. 나씨는 퀴즈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 그렇다고 세상일이 다 퀴즈 같을까?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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