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하는 오후

입력 2001-06-04 00:00:00

나는 왠지 잘 빚어진 항아리보다좀 실수를 한 듯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내를 따라와 옹기를 고르면서

늘 느끼는 일이지만

몸소 질그릇을 굽는다는

옹기점 주인의 모습에도

어딘가 좀 빈데가 있어

그것이 그렇게 넉넉해 보였다

내가 골라 놓은 질그릇을 보고

아내는 곧잘 화를 내지만

뒷전을 돌아보면

그가 그냥 투박하게 웃고 섰다

가끔 생각해보곤 하는데

나는 어딘가 좀 모자라는 놈인가 싶다

질그릇 하나를 고르는 데도

실수한 것보다는 차라리

실패한 것을 택하니

-정희성 '옹기전에서'

일류 지향, 최고 지향의 사회에서 2등조차도 곧잘 죽음이 된다. 그러나 현실은 모든 이를 다 일등으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이게 문명의 숙명이고 도시의 운명이다. 일등에서 비껴나면 곧바로 사회적 일탈을 경험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실수를 한 듯한 ''어디가 좀 빈 듯한' 옹기는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시에는 일류가 되지 못한 삶을 되레 일류로 파악하는 역설이 있고, 세속적인 일등의 삶을 야유하는 풍자가 있다. 이것이 시의 진정성이고 시의 순정이다. 그리고 진실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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