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이 문학으로 승화되었을 때 그것을 예술적 에로티시즘으로 부른다. 성이 단순한 성적 쾌락과 퇴폐적 열락을 초극해 사모와 연모를 근저로 하는 근원적인 그리움과 사랑이 되었을 때 그것은 예술의 영원한 모티브이면서 아스라한 극점이 될 수 있다.
한국 현대시에 배어있는 에로티시즘의 맥락은 어떤 것인가. 계간 시전문지 시안(詩眼) 여름호가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에로티시즘'을 기획특집으로 꾸며 시선을 모으고 있다.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평론가)는 '시와 섹스를 위한 변명'이란 주제의 글에서 "시와 섹스는 무시간성의 공간 속에서 타오르는 순간적인 정념의 불꽃과도 같다"며 이상·서정주·송욱·정현종·김선영·채호기 등으로 이어져온 '시와 섹스의 은은한 내연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승하 중앙대 교수(시인)는 1980~90년대 외설적인 시를 중심으로 한 '성담론의 시적 변용'이란 주제발표에서 '성'을 다룬 문학의 반체제적 성향을 들며 우리 현대 시문학사에서 외설이 체제비판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기 시작한 때를 1950년대로 봤다.
당시 송욱과 전영경의 날카로운 현실풍자와 이승만 정권 비판정신이 1980년대에 재현되면서 시인들은 외설시로 무소불위의 5공정권과 참담한 시대상을 꼬집었다는 것.
박남철의 '우리들의 변태성욕'과 황지우의 '숙자는 남편이 야속해', 고정희의 '뱀과 여자'는 외설이란 방법을 동원해 군사정권과 타락한 사회를 비판한 시들이다. 사회의 성풍속도가 많이 바뀐 1980년대 후반들어 외설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구사된다.
포르노테이프의 유통, 퇴폐 이발소와 룸살롱의 성업, 에이즈환자 증가, 성전환 수술자와 동성애자의 공식 출현시기에 장정일(늙은 창녀)·김영승(반성) 시인은 거리낌없는 성담론을 통해 이율배반적인 기성세대를 질타했다.
1990년대로 접어들자 성에 대한 개념은 또 달라졌다. 성이 상업광고의 가장 중요한 전략이 됐고 영화예술의 최고 모티브가 됐으며 인터넷 음란사이트에 엄청난 나신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판국에 일부 시인의 외설적 표현은 차라리 약과에 불과했다.
이때 함민복은 '내귀가 섹스 쪽으로 타락하고 있다'·'인공수정'이란 시를 통해 문명비판에 주력했으며, 유하 시인은 '파리애마'와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란 외설시로 타락한 사회를 풍자했다.
그러나 중견시인들은 성 자체의 아름다움과 건강함을 노래하기도 했다. 김주혜는 '동침'에서 부부지간의 운우지정을 더없이 아름답게 그렸다. 오세영은 '정사'에서 유쾌한 성을, 이수익은 '그리운 밀림'에서 건강한 성을, 임영조는 '여름산행'에서 생명력 넘치는 성을 그렸다.
이 교수는 "변태적인 성행위는 인간의 추악함을 드러낼 뿐이지만 원초적 성행위는 생명의 위대함을 드러낸다"며 "아름다움과 건강함을 추구하는 시들이야 말로 이시대의 진정한 '외설시'"임을 강조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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