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막오른교육감선거

입력 2001-06-01 00:00:00

불.탈법 난무(2)

'구속 1명, 검찰 고발 7명, 수사의뢰 26명, 경고 7명, 주의 2명'이번 교육감 선거와 관련해 대구시 선관위와 사법당국이 내린 조치다. 학교운영위원장 협의회 모임, 동기 모임 등에서 지지를 호소하며 향응을 제공하거나 연하장 발송, CD나 명함 배포 등이 조치의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출마 희망자와 교육계 인사들 사이에 '경고 하나쯤은 후보등록 전에 받아둬야 할 필수품'이라는 인식이 번져 있다는 사실이다. 한 출마 희망자는 "경고를 받은 뒤, '훈장 하나 받은 셈 치라' '선거에는 전혀 영향이 없을 것'이란 주위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연말 선거 분위기가 고개를 들자 교육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선거가 6개월 넘게 남았는데 너무 일찍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거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교육계의 '특수상황'을 지적했다.

지역 교육의 수장을 뽑는 교육감 선거는 일반적인 정치 선거와 달리 고도의 도덕성, 합법적 절차, 선명한 정책대결 등을 요구받는다. 유권자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교육계 선거는 깨끗해야 한다"는 기대가 큰 게 사실. 한 교육공무원은 "선거 관련 불법 사실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친구나 외부 사람들 만나기가 민망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출마 희망자들의 움직임은 정치인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후보에 따라 지난 겨울방학 동안 학교를 돌아다니며 교장, 교감 등을 만나거나 각종 모임에 얼굴을 내밀고 술 사고 밥 사는 일도 마다않았다.

학교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출마 예상자 가운데 득표력을 갖췄다거나 경쟁관계에 놓인 사람들의 경우 일방적인 험담이나 비난의 도마에 오르기 일쑤. 한 교장은 "교육계라는 게 돌아보면 선.후배 관계가 되고, 수십년 동안 얼굴을 맞대던 곳인데 선거 때문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돼 버리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금권 선거로 얼룩지는 데 대한 우려도 크다. 선관위에 적발된 사례에는 돈을 쓴 액수가 그리 많지 않고 뚜렷이 드러나는 사실도 없지만 속내를 들어보면 상상 이상이다. 교육계 한 인사는 "후보에 따라서는 벌써 수천만원을 썼다고 하는데 막판에 가면 실탄(돈) 싸움이 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고 걱정했다.

그는 '20억설' '30억설'도 나돈다고 했다. 유권자인 4천500여명의 학교운영위원 가운데 과반수를 차지하려면 2천명 이상은 확보해야 하는데, 생활수준이 대체로 높은 만큼 선물이나 식사 대접 등에 1인당 100만원씩은 들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계산이다. 다소 지나친 얘기지만 그만큼 이번 선거도 돈에 의해 승부가 갈라지리란 인식이 강하다는 방증이다.

지난 두달 가까이 선관위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통에 선거열기는 다소 주춤하고 있다. 하지만 공식 선거전이 시작되는 오는 9일 후보등록 후에는 교육계가 선거의 진흙탕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후보들의 입에서 소신 있는 교육 정책만 나오리라 보기 어렵다. 자칫 헐뜯기만 난무하거나 돈으로 표를 사려는 현상만 불거질 가능성이 적잖다.

교육계에서는 누가 교육감이 되고 어떤 정책을 펴나가느냐보다 당장 닥칠 선거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벌써 '교육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은 사분오열되고 후보 뿐만 아니라 지지세력 간에도 앙금이 쌓여가는데 과연 어떻게 이를 풀어나가느냐는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 모든 과정을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낱낱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교사는 "앞으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칠 일이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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