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사랑의 달, 신록과 장미의 계절…. 오월은 그 어떤 수식어를 갖다붙여도 모자란다. 그만큼 봄의 정절인 오월은 화려하다. 지난 주말, 수십년동안 한 가족처럼 터놓고 지내시는 김 선생님 큰따님 결혼식에 참석하러 서울을 다녀왔다. 초록물이 뚝뚝 듣는 듯한 신록이 만들어내는 평화로운 풍경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하늘은 쾌청하기만하다. 세금 한 푼 안내고 '하늘 만평 사 두었다'고 이 땅의 하늘을 선점해버린 일등 마음부자이신 스승은 어느새 정년퇴임의 문턱에 있고, 유치원생이었던 귀염둥이 딸애도 나이가 꽉 차 시집을 간단다. 참 속절없이 세월만 흘러가고 있었구나.
오월은 내 인생의 첫 출발점이기도 하다. 오월은 가난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른살 예비 시인도 장가를 든다. 맞선 자리에서 신부측 손위어른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떠냐"고 물었다. 당시 출판사에 몸담고 있던 나는 "책 만드는 일은 평생을 바쳐 싸워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도 이 생각은 별로 변함이 없다. 이 당당함이 그 분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했다던가. 뒷날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맞선을 보고 서너번인가 더 만난 자리에서 대뜸 "내가 가진 것이라곤 책 이천권밖에 없소. 오고 싶으면 오고, 말고 싶으면 마시오". 지금 생각해도 이보다 더 싱거운 청혼이 또 있겠는가. 나에겐 과분한, 셈속 밝은 은행원이었던, 수줍음 많은 처녀는 귓불만 붉혔다. 그리하여 그만 가난뱅이 문사(文士)를 삐적삐적 따라 나섰던 것이다. 서둘러 혼례를 치렀다. 두 칸 삭월세방에 책만 이천권 달랑 들여다 놓고 시작한 신혼생활, 그러나 우리는 한번도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의 부(富)의 기준은 책을 마음껏 사 볼 수 있을 정도면 족했으니까 말이다. 물론 아내의 마음 고생은 심했으리라.
오월의 신부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순결한 흰빛 웨딩드레스는 초록빛 오월과 궁합이 잘 맞다. 지상에서 가장 예쁜 오월의 신혼부부들에게 청신한 봄햇살만큼이나 따스하고 행복하기를 빈다. 박진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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