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한국미술의 생명력

입력 2001-05-22 14:27:00

한국화와 서양화의 가장 큰 차이는 필선(筆線)을 보는 관점이 아닐까. 한국화에서 필선은 단순한 라인(line)이 아니라 비수(肥瘦.살찌고 여위었다)의 개념을 갖고 있다. 뛰어난 한국화를 그리려면 필선을 사람의 몸과 같은 생명체로 느껴야만 가능한 것이다.

특히 '붓'은 서양화의 브러시와 달리 생명력을 표현할 수 있는 변화무쌍한 도구다. 부드럽기로 말하면 봄누에가 명주실을 토하는 것 같고, 강하기로 말하면 도끼자국을 보는 것 같다. 이같은 장점을 갖고있는 우리 미술의 생명력과 흐름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미술은 아름다운 생명체다(다할미디어 펴냄)'의 저자 정병모(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씨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붓질을 버리고 브러시의 털끝에서 헤매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헤쳐나가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선사시대 바위그림, 탑, 무덤벽화, 불화, 진경산수화, 풍속화, 민화 등 각 시대를 풍미한 대표적인 장르 12개를 모아 재미있게 풀어썼다.

"코카콜라 회사는 여성의 몸매를 본떠 만든 콜라 병의 아이디어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우리 도자기에서 인체를 표현한 예를 찾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건장한 몸매, 홀쭉한 몸매, 단아한 몸매, 뚱뚱한 몸매 등등…".

회화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고 있는 부분은 '여백의 미'다. 유난히 터진 공간을 좋아했던 우리 조상들은 건축처럼 그림속에서도 시원스럽게 넓은 공간을 즐겨 나타냈다. 여백의 미를 향유하려면 오랜 세월 그림속에서 그림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고차원적인 심미안을 가져야 가능하다는 것. 우리는 그만큼 차원높은 예술적 경지를 갖춘 민족이 아니겠는가.

저자는 조선후기의 풍속화가 강렬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면에서 80년대의 '민중미술'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봤다. 혜원 신윤복의 에로티시즘은 단순한 유흥놀이에만 머물지 않고 유흥문화를 통해 당시 절박한 사회문제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미술사를 이해함으로써 우리 미술에 내재된 박동소리와 호흡이 우리 삶을 지속시키는 중요한 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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