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마저 '양심불량'

입력 2001-05-18 14:35:00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안동지역 어린이신문인 '키즈뉴스'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초등학생 10명 중 6명이 주운 물건을 자신이 가지거나 친구에게 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일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라는 새싹들의 양심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다. 한편에선 기성세대들의 물질만능주의가 가져온 부정적 산물이란 자성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부분 어린이들이 죄책감 없이 주운 물건을 자신이 갖고 절반 가량은 '주운 사람이 임자'라는 생각을 가졌다는 점. 도덕성은 물론 준법정신마저 결여돼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키즈뉴스가 안동지역 2개 초교 4학년 이상 어린이 338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주운 물건을 '혼자 가지거나 친구에게 줬다'는 어린이가 63.2%가 됐다. 특히 주운 물건을 가진 이유에 대해 '주운 사람이 임자이기 때문에'란 응답이 34.9%나 차지해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줍기에서 훔치기로'-어린이 도벽

영양지역 초등학교 김모(12)양은 작년 5월 한달간 수차례 빈집과 상가에 들어가 돈과 물건을 훔쳐오다 경찰에 붙잡혔다. 김양도 처음부터 도벽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99년 3월 오락실에서 1천원을 훔친 것이 시작. 이전에 주운 물건을 아무런 죄의식없이 자신이 사용해 온 것이 도벽까지 갖게 한 계기가 됐다. 김양은 빈집과 교실, 교사 호주머니, 친구 가방에서 돈과 물건을 훔쳐 오락실에서 친구들과 사용했다.

2년전 안동지역 여중학교 학생 7명은 후배들에게 상습적으로 돈을 갈취하고 골목길 주변 빈집과 상가에서 돈과 물건을 훔쳐오다 경찰에 붙잡혔다. 강모(당시 15세)양은 경찰 조사에서 "초등학교때 교실에서 친구 오락기를 주워 사용했으나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이후로 책상에 있는 연필 등 마음에 드는 물건을 훔쳤고, 들킨 뒤에도 주웠다고 핑계되면 선생님들도 용서해 주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여긴 버릇은 자신도 모르게 도벽으로 발전 심지어 폭력과 갈취 등 학생폭력 문제로 이어지는 사례는 빈번하다.

◇잘못은 어른들로부터

어린이들의 그릇된 의식에 대해 건강한 가치의 붕괴, 기성세대의 잘못된 행동, 그릇된 자식사랑이 빚어낸 결과라는 목소리가 높다.

전교조 안동지회 우재찬 초등위원장은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이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남아 아동들이 비양심적 행동에 아무런 죄의식을 못느끼게 만들었다"며 "쉽게 생각하고 쉽게 버리는 인스턴트 문화도 한 몫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민덕기 안동지부장도 "방송과 신문을 통해 접하는 어른들은 온통 잘못된 것 투성이"라며 "기성세대들의 자성과 주운 물건을 쓰는 것은 범법행위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안동교육청 초등교육계 박창한 장학사는 "물질만능주의 학부모들의 그릇된 자식사랑도 한몫하고 있다"며 "물건을 잃어버려도 금세 다시 사주기 때문에 잃어버린 아동들도 굳이 되찾으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구대 사회학과 홍덕률 교수는 "어린이 문제는 교육의 문제이자 곧 어른과 사회 문제로 이어진다"며 "어린이들의 건강한 가치인 정직.양심.질서 등이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음을 반증한 것"이라고 심각성을 지적했다.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

교사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맡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 주운 물건을 잘 신고한다는 아동들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러나 잃어버려도 다시 사면 된다는 생각과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애착이 없는 아동들의 의식으로 인해 양심 실종 사례는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교육과정에도 문제가 있다. 과거엔 도덕이나 바른생활 등 인성교육과 참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한 교육이 우선시됐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은 수리능력, 외국어 능력 등 획일적인 평가위주의 교육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루하루 교과수업 외에 각종 공문처리에 골머리를 앓는 현장의 교사들은 아동들이 바른 인성을 갖도록 일일이 생활지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성적이란 잣대로 아동을 평가하고 이를 위해 전력투구하는 교육현장에선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힘들다는 것.

"주운 물건을 자신이 쓰면서도 당연스레 여기는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까요?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 영어 단어 하나 미리 가르치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 꾸준히 교육해야 하지 않을까요?" 키즈뉴스 설문소식을 접한 한 초교 교사의 자조어린 탄식이다.

안동.영양 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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