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영혼이 살아있는 지도자

입력 2001-05-17 00:00:00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자는 어떤 사람일까. 공자(孔子)는 이를 두고 '백성에게 믿음을 주는 지도자'라 했다. 정치지도자는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항상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비를 튼튼히 하며 백성들이 믿고 따르게 해야 하지만 어쩔수 없이 버린다면 먼저 군비를 버리고 다음으로 식량을 버리더라도 백성들에게 믿음만은 끝까지 주어야 한다는 것이 공자 말씀의 요체다. 지도자와 국민 사이에 믿음만 있으면 국민총화가 이루어지고 자연스레 식량과 군비를 갖출 수 있을터이니 백번 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요즘 같은 세태에 뛰어난 경륜으로 나라를 이끄는 한편으로 한번 내뱉은 약속은 죽어서라도 지켜서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그런 이상형의 지도자를 찾기란 참으로 힘들것만 같다.

무관심, 무소신, 무책임의 정치

그래서 나는 그보다는 못하더라도 '노(NO)'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지도자, 비굴하게 정치할 바엔 차라리 정치를 그만두겠노라고 말할 수 있는 지도자-다시말해 영혼이 살아있는 지도자면 족하다는 생각을 갖곤 한다.

전국민이 반대해도 옳다는 믿음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는 그런 배포와 성깔있는 사람이라면 지도자로 손색이 없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다른 건 몰라도 좋은 지도자를 모실 복(福)만은 지독스레 없는 것만 같다. 역대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을 보면 이러한 사실은 더욱 확연하다.5공(共)때의 전두환 전 대통령은 비전없는 철권정치로 밀어붙이기만 한다해서 '무데뽀'(無鐵砲)라 할만하고 6공의 노태우 전 대통령은 폼 잡고 정치 자금이나 챙겼을뿐 국정에 관한한 전문성도 열의도 없었던 만큼 무의욕(無意慾)대통령으로 불릴만 했다. 문민정부의 YS는 민주투쟁외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환란을 보고하러 들어간 장관에게 클린턴과 친하다고 자랑을 늘어놓는 통에 입도 떼지 못하고 돌아나왔을만큼 국정에는 아예 무관심(無關心)했었다.

국가경제 거덜내고 국민불신 초래

끝으로 개혁을 시작해 놓고는 누가 거세게 반발만하면 금방 걷어치우고 그 책임자에 대해 문책은 커녕 되레 중용하는 DJ식 통치는 굳이 따지자면 무소신(無所信), 무책임(無責任)형이 아닐는지-. 결국 따지고 보면 우리는 지금까지 국민과 아픔을 같이 하며 10년앞을 내다보는 혜안의 지도자, 온갖 권력의 유혹앞에 당당 할 수 있는 강한 영혼의 지도자를 만나볼 청복(淸福)을 누리지는 못한 셈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이런 와중에 3공(共)의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존재는 특이한 느낌이다. 독재를 하고 못된 짓도 많이했기에 논란의 여지가 많긴하지만 '끈적끈적한'다른 지도자와는 달리 카랑카랑한 품세부터 '영혼이 살아있는 지도자'란 느낌마저 갖게 한다. 근래 우리 지도자들로서는 드물게 외세(外勢)앞에 당당했던 그는 드센 반대를 무릅쓰고 고속도로를 뚫고 댐을 막을만큼 배포 큰 혜안의 소유자 이기도 했던게 아니던가. "조국 근대화를 위해 무리를 했다면 죽고난 뒤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외쳤던 그는 독재자란 이유로 일부 사람에겐 존경의 대상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의 끗발이나 세우고 정치자금이나 챙기는 그런 부류의 지도자와는 확연히 다른 면모를 가졌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여기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고인의 얘기를 구태여 들추어 내는 것은 '박정희-위대한 지도자'라고 새삼스레 추앙하려는 때문이 아니다. 다만 독재는 비난 하더라도 고인이 남긴 성실성과 지도력, 미래를 내다본 혜안만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인 것이다. 18년을 권좌에 앉고도 부패하지 않았던 그 청렴성만은 집권5년동안에 수천억원의 정치자금을 챙겨넣곤 하는 요즘의 지도자들이 꼭 배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코자 할 따름인 것이다.

'박통'의 청렴, 성실함 본받아야

우리는 박정희식 독재를 누구보다 싫어한다. 그렇지만 굶주리는 이 나라를 위해 불철주야 노심초사한 고인의 성실성만은 잊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벌써부터 함량미달의 대권주자들이 자신의 경륜은 생각지도 않고 권력욕만 갖고 날뛰는 것을 보면서 "열심히 일하는 것부터 배우라"고 충고하고 싶은 마음에서 몇자 적어보는 것이다.

지금 이 땅의 지도자중에 20년후에 우리 기억에 남아 인구(人口)에 회자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지 의문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기억에 남아 존경과 한편으론 미움의 대상이나마 되고 있는 것만 해도 '박통'은 이미 '잘난 사람'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金燦錫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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