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비주류 한국여성들

입력 2001-05-15 14:25:00

지금부터 꼭 70년전인 1931년 5월의 칠흑같이 어두운 밤, 한 여자가 평양 을밀대의 지붕 한끝을 타고 올라간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그 여성은 평양 고무공장의 임금인하에 맞서서 고공농성을 감행한다.

"평양의 2천300명 (고무공장)동무들의 살(임금)이 깎이지 않기 위해 내 한 몸뚱이가 죽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끝까지 임금 감하를 취소치 않으면 나는 노동대중을 대표하여 죽음을 명예로 알뿐 입니다".

9시간이나 목이 터져라 외치다가 강제로 끌려내려와 투옥된뒤 57시간 단식투쟁을 벌여 결국 평양고무공장 직공의 임금인하를 막아낸 '을밀대 위의 주부 투사' 강주룡은 극심한 신경쇠약과 소화불량으로 보석되었다가 평양 서성리 빈민굴에서 숨졌다.

여성사 연구모임 '길밖세상'이 여성신문사에서 펴낸 '20세기 여성사건사'는 근대 여성교육의 시작에서 현대 사이버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년동안 역사를 여성주의 시각으로 새로 썼다.

신문지상에 오르내린 27건의 사건을 중심으로, 주류역사에서 배제된 채 20세기를 살다간 한국여성들의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통쾌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의 면모를 들여다보면 한국사회라는 특정조건 안에서 작동하는 성별정치학을 볼 수 있다. 처음으로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을 폭로했던 권인숙 사건은 민주화운동 탄압의 한 예이면서 동시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가 숨어있다.

여자를 사랑한 여자(1931년 동성연애 철도자살 사건), 남성 팬터지의 산물-자유부인의 성 정치학(1950년대 자유부인 논쟁), 호주제-식민주의와 가부장제의 공모(가족법 개정운동), 서글픈 공순이에서 당당한 노동자로(1976년 동일방직 여성노동자파업), 당신의 결혼을 알리지말라(결혼퇴직제),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의 낮은 목소리(1991년 김학순의 증언),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 단 하루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황혼이혼), 사이버 스페이스, 여성운동의 새로운 도전(표현의 자유와 사이버 성폭력) 등이 실려있다.

최미화 기자 magohalm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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