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잊혀진 두편의 시
"무릇 모든 시비(詩碑)에는 그 시인의 대표작을 싣는다. 전국 최초 시비로 향토 대구 달성공원에 서 있는 상화시비에는 '나의 침실로' 일부가 새겨져 있다. 과연 상화는 '나의 침실로'가 새겨져 있는 사실에 만족할까? 상화 생시에 문하생 이문기가 물었다.
"선생의 대표작은 '나의 침실로'입니까?"
"그 작품이 시인집에 실려 다니나 불쾌하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동경에서'('도쿄에서'를 지칭)를 더 아낀다".
상화시인은 분명히 그렇게 답했다.
경향파로 넘어오고 난 뒤, 초기시를 반성하며 불쾌하게 여겼던 '나의 침실로'가 시비에 새겨지기까지는 논란이 있었다. 절친한 친구이자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였던 목우 백기만은 시인 김소운의 요청으로 시비건립 취지문을 쓰면서 분명히 밝혔다.
"상화 시비에 '나의 침실로'를 새겨서는 안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새겨야한다"고. 하지만 목우의 이런 주장은 시비 건립을 맡았던 김소운 등에 의해 무시됐다. 순수예술을 표방한 이들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나의 침실로' 두편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다가 결국 '나의 침실로'를 택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조선 현 정세에 있어서 반일적인 것은 앞으로 몇 해 뿐이오, '나의 침실로'의 순수시로서의 가치는 영원한 것이다".
과연 해방 공간의 문인들이 쉽사리 낙관했듯이 반일 내지 극일이 몇년만에 해결될 만만한 문제였던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국어교과서에서 퇴출돼버린 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는 달리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도쿄에서'를 소개한다.
오늘이 다되도록 日本의 서울을 헤매어도/나의 꿈은 문둥이 살끼(살결의 경상도 방언)같은 조선의 땅을 밟고 돈다.//예쁜 人形(인형)들이 노는 이 都會(도회)의 豪奢(호사)로운 거리에서/나는 안 잊히는 조선의 하늘이 그리워 애닯은 마음에 노래만 부르노라.(중략)//아 진흙과 짚풀로 얽맨 움밑에서 부처같이 벙어리로 사는 신령아/우리의 앞엔 가느나마 한가닥 길이 뵈느냐-없느냐-어둠뿐이냐?//거룩한 單純(단순)의 상징체인 흰옷 그 너머 사는 맑은 네 맘에/숯불에 손덴 어린 아기의 쓰라림이 숨은 줄을 뉘라서 알랴!//碧玉(벽옥)의 하늘은 오직 네게서만 볼 恩寵(은총) 받았던 朝鮮(조선)의 하늘아/눈물도 땅속에 묻고 한숨의 구름만이 흐르는 네 얼굴이 보고 싶다.//아 예쁘게 잘 사는 '東京'의 밝은 웃음 속을 왼데로 헤매나/내 눈은 어둠 속에서 별과 함께 우는 흐린 호롱불을 넋없이 볼 뿐이다.//(1922년작, 1926년 1월 '문예운동' 창간호 수록)
영남대 이기철 교수는 상화의 시 '도쿄에서'가 프랑스 유학을 꿈꾸면서 화려한 도쿄 생활을 했으나 끝내 움막과 짚풀과 호롱불 그리고 헐벗고 굶주린 조국의 동포들을 잊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이상화 전집'(문장사 펴냄)에 썼다.43세에 생을 마감한 상화가 '백조(白潮)' 창간호에 '말세의 희탄'을 발표한 1922년부터 '문장(文章)' 25호에 '설어운(서러운) 해조(諧調)'를 발표한 1941년까지 약 20년 동안 시를 썼지만 30년 이후로는 거의 창작하지 않아 정작 시활동을 한 것은 1930년까지 10년에 불과하다. 1925년을 분기점으로 그 이전은 탐미적이고 관능적인 세계를, 그 이후에는 저항의식을 주로 담고 있다.
상화가 쓴 '대구행진곡'에는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유명한 요리집 기오노이에(靑乃家)의 별장 유원지 '도수원'(刀水園)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전략) 반넘어 무너진 달구성 옛터에나/ 숲그늘 우거진 도수원 놀이터에/ 오고가는 사람이 많키는 하여도/ 방천뚝 고목처럼 여윈이 얼마랴/(후략)"이 도수원은 지금의 칠성동에 있던 유원지 가운데 하나로 확인됐다. 당시 도수원 못바닥의 준설공사를 맡았던 건설업체의 현장 감독 강신진(84·대구시 남구 대명6동)옹은 1937년에 못물이 얕아져서 보수공사를 했으며, 도수원 못가에는 소공원이 있었고, 맑은 못물에 잉어떼들이 뛰놀았다고 증언했다. 이런 대구행진곡과 교남학교(현 대륜학교) 교가를 포함해서 상화시인이 쓴 작품은 64편인지 66편인지 아직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않고, 제목조차 제대로 고증이 안된 작품도 섞여있어서 후학들의 무관심을 드러낸다.
이기철 교수는 '이상화전집'에서 시 63편(창작소설 1편, 장편 번역 1편, 단편 번역 4편, 문학평론 7편, 서간 감상 수필 단평 기타 15편도 있음)으로 보고있고, 정진규씨는 '이상화'(문학세계사)에서 62편으로, 대구문인협회가 펴낸 이상화 전집(그루)에는 64편으로 보고돼있다.
그러나 상화가 신여성 1925년 1월호에 게재한 워싱턴 어빙의 '스케치북' 가운데 '단장'을 번역하면서 글의 시작과 끝부분에 기재해둔 미들톤의 시(제목 미상)와 무어의 시(제목 미상) 등 번역시 두편을 소개하고 있는 점이 간과돼 있고, 아직까지 상화가 썼다던 경주아리랑의 행방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최미화기자 magohalmi@imaeil.com
도움말 주신분=이상희 전 대구시장, 김정원 대구 문흥 책박물관 대표, 진명사 이석주 대표(한국 고서협회장), 금요화랑 박금철 사장, 강신진 전 건설업체 현장감독, 이상규 경북대 국문학과 교수, 이기철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김철수 경북대 영문학과 교수. 영국대사관.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김정숙 소환 왜 안 했나" 묻자... 경찰의 답은
"악수도 안 하겠다"던 정청래, 국힘 전대에 '축하난' 눈길
李대통령 지지율 2주 만에 8%p 하락…'특별사면' 부정평가 54%
한문희 코레일 사장, 청도 열차사고 책임지고 사의 표명
국회 법사위원장 6선 추미애 선출…"사법개혁 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