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용 폐비닐로 인한 농경지 오염이 심각하다. 산.하천 곳곳이 폐비닐에 덮여 신음하고 있다. 농민들은 이미 몸에 익어 버렸고 당국 대처도 실효가 없다.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안동시 와룡면 태리 자원재생공사 안동사업소. 1천800여평 부지에는 한치 여유 없이 1만1천t의 폐비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안동과 예천을 담당하는 이 사업소의 연평균 수거량은 1천200t 정도. 8년치가 그냥 마당에 재여 있는 셈이다.
야적장 부지가 동나자 3년 전부터는 인근 사유지 1천300평을 빌렸으나 그마저 포화상태가 돼 버렸다. 자원재생공사 안동 폐비닐공장 박상대(40)씨는 "우리 공장에선 연간 5천t을 처리할 수 있으나 경남북 각 사업소에서 연간 1만t 이상이 반입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런 탓인지 영양읍 감천리 반변천 상수원지역 하천 부지에는 영양사업소가 1987년부터 폐비닐 5천t을 14년째 야적해 두고 있다. 거기서 흩어져 나온 폐비닐이 주변 강바닥을 빼곡이 덮고 있었다.
자원재생공사 통계에 따르면, 1999년 기준 전국 연간 폐비닐 발생량은 9만7천t에 이른다. 5t 트럭 2만대 분량. 1990년 8만6천t에서 또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그 절반에 가까운 4만여t은 수거조차 되지 않는다. 그냥 논밭 가나 하천.산에 갖다 버리거나 농민들이 집하장까지 옮기기 귀찮아 마구 태워 버린다는 얘기. 시청.군청들도 그저 도로 주변 것들이나 치우는 눈가림식 대처로 그친다. 취로사업 인부를 동원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수거 업무를 거의 자원재생공사에 떠밀고 있다.
하지만 재생공사도 여건이 어렵기는 마찬가지. 안동사업소 경우 안동.예천 등지의 2개읍 23개면 수거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나 가진 역량이라곤 트럭 4대와 인부 6명이 고작이다. 능동적인 수거는 고사하고 읍면의 수거 요청조차 제대로 소화해 내기 힘든 상황인 것.
이런 가운데 자원재생공사는 IMF 사태 이후 수거 예산조차 마구 줄여 버렸다. 1998년 156억원이던 것이 올해는 90억원으로 감축됐다. 그러면서 수거 보상금 지급을 2년 전부터 중단해 버렸다. 이러니 수거가 더 안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또 있다. 수거된 비닐 중 공장에서 정식으로 처리되는 것은 2만2천t(연간)에 불과하다. 재생공사가 운영 중인 폐비닐 재생처리 공장은 안동.청주.담양.시화 등에 4개 뿐. 매년 2만여t이 공장에서 재고로 쌓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공장 재고량은 20만t에 이른다.
사업소들은 수거한 폐비닐을 먼저 '고밀도'와 '저밀도'로 나눈다. 고밀도는 전국에 4곳 있는 폐비닐공장에서 재생 처리토록 보낸다.
그러나 문제는 '저밀도' 폐비닐들. 이것은 하우스에 쓰이는 것으로전체 폐비닐 발생량의 40%를 차지하나 현재 갖춘 공장 시설로는 재생 처리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자원재생공사는 이것을 한때 민간 폐기물 재활용 업체에 원료로 공급했었다. 그러나 IMF사태 이후 민간 업체들의 연쇄 도산으로 처리할 길이 막혀 버렸다. 폐비닐 재고가 늘고만 있는 주원인.
답답해진 공사측은 1997년부터 민간 무역업자에게 넘겨 중국으로 연간 6천t 정도 수출해 보려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환경과 관련한 바젤협약 때문에 올해부터는 그마저 중단됐다. 지금은 동남아 개도국들로 수출선을 전환하기 위해 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 더불어 지난해부터는 '쌍용양회'의 시멘트 생산 공정 연료로 보내려고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모색 중인 길은 연간 2만t씩을 압축해 지정 비축시설에 보관하는 방안. 이것 역시 아직은 예산은커녕 구체적 실행계획이 확보되지 않은 구상 단계에 불과하다.
처리가 어찌됐건 일단 수거 자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들 이견이 없다.
우선 시청.군청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경고. 현재 이들은 kg당 10∼50원 정도의 보조금을 마을 부녀회 등에 줘 폐비닐 수거를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 돈은 인건비도 안된다. '청소 업무'로 책정, 보다 책임감 있게 이 일을 맡고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였다.
자원재생공사 안동사업소 이상열 소장은 "배출자인 농업인들 스스로 생각을 바꿔야 하고, 당국은 마을 단위 집하장을 늘리는 등 농민들이 보다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다. 농촌경제연구원 허장 책임연구원팀은 "농촌지역에 대해서는 쓰레기 종량제를 전면 재검토해 수거가 쉽도록 하고, 마을 단위로 수거장을 마련한 뒤 수집량에 따라 보조금을 높여 주는 인센티브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재생처리 설비 강화도 당연히 뒤따라야 할 과제. 국가가 폐비닐 처리공장을 늘리고, 민간 재생처리 업체를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환경적 썩는 비닐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영주.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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