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날' 특별기고-조창학(대구지법 판사

입력 2001-05-02 00:00:00

38회 법의 날을 맞은 지금, 국민들은 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까. 일전에 신문 지상에서 국민 상당수가 법을 준수할 경우 이득보다 손해가 많고, 법이 나의 이익과 권리를 지켜주기보다 침해하거나 제약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부정적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법조계의 한 사람으로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상대방 입장을 생각해야

당사자들 사이의 감정의 골이 매우 깊어진 사건을 심리하면서 자주 떠오르는 것이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평범한 한자성어이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는 것,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말이고 또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상대방의 잘못만 크게 보이고 나의 잘못은 도무지 보이지도 않고 생각하기도 싫어하는 당사자들, 나의 이익만 보일 뿐 그로 인해 입게 될 상대방의 손해는 고려조차 하지 않으려는 당사자들,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당자자들이 증가하여 가는 안타까운 현실이 부정적인 법인식에서 어느정도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교통사고를 목격하고서도 수사기관 등에 출석하여 진술하는 것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진실을 밝히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 또한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 동참하여 거짓이 발 붙일 여지를 없애는 것이 결국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천민자본주의만 넘쳐나

법정에서 친분이 있는 당사자의 부탁으로 죄의식 없이 위증을 일삼는 사람들은 자신이 소송 당사자가 되었을 경우를 떠올려 보아야 한다. 위증을 추방하는 것이 결국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구속되었음을 기화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들이 구속되었을 경우를 생각하면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 것인지 쉽게 해답이 나올 터이다.

법이라는 것은 인간의 양심에 기초한 도덕규범(道德規範)을 바탕으로 하여 이뤄진 것이므로 법을 논하기 전에 먼저 도덕적인 측면에서 사리를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회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이다.

원조교제, 부모에 대한 패륜행위, 채무자로 하여금 장기까지 팔도록 강요하는 악덕 사채업자에 관한 기사가 연일 지면을 뒤덮는 것이 우리사회 도덕수준의 현주소이다.

도덕수준이 높은 사회는 구성원들이 비도덕적 행위를 한 자에 대해 인권침해에 이르지 않을 정도의 심리적, 물리적인 도덕적 제재를 가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천민자본주의의 물결에 빠져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자임에도 경제적 능력만 출중하면 비난하고 멀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러한 자와 가까이하여 이득을 얻는 것에 골몰하고 있다. 도덕적 제재도 퇴색하고 도덕적 비난도 무감각해져가는 느낌이다. 이는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의 비도덕적인 행태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지만 일반 국민들 역시 그를 비난하면서도 답습하는 데에 원인이 있다.

법이 지배하는 사회 기원

채무를 변제하지 못한 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채권자에게 호소하며 채무변제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채무자는 나몰라라 하다가 채권자가 소송을 제기하거나 조정을 신청하면 도리어 채권자를 탓하며 이를 빌미로 채무변제를 거부함은 물론 당당하게(?) 채권자를 나무라는 뻔뻔스런 경우들을 자주 본다.

이처럼 도덕적 신의가 허물어짐으로 인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기피하는 바람에 악덕사채업자가 어려운 서민들을 울리는 세상이 된 것이 아닐까.

아무쪼록 법의 날을 맞아 허물어진 도덕적 신의를 다시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하루 빨리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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