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수술환자 모임 '건미회'희망을 가꾸며 살아간다

입력 2001-04-28 12:23:00

어느날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며 날벼락처럼 찾아오는 암, 현대의학조차 무기력하게 만드는 이 천길 낭떠러지의 절망을 딛고 남을 생을 희망으로 가꾸는 '건미회' 사람들. 대구 경북 유방암 환자들의 모임인 '건미회' 회원들은 그래서 아름답다.

노용수(55.대구 동구 신천동)씨. 그녀는 "암 수술을 받고 난 다음부터 오히려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노씨가 유방암 선고를 받은 것은 1985년 12월. 가슴에 작은 멍울이 만져져 경북대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는 유방암 1기. 가슴 한쪽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난 다음 죽음이 임박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남편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아들이 내가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퇴원해 보니 집안 정리도 잘 돼 있고 가족들의 표정도 너무 밝았습니다. 나 없으면 못 살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노씨는 그 때부터 '엄마의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몰두한 것이 취미생활과 봉사활동. 음악공부, 미술공부, 여행 등 안해본 것이 없지만 무엇보다 큰 기쁨은 봉사활동이었다.

대구볼런티어센터에 자원봉사자로 등록한 노씨는 장애인 차량지원, 복지관 도서실 책관리, 대학병원에서 환자 길안내 등의 활동을 하며 봉사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절망을 겪어 본 사람만이 희망의 소중함을 압니다. 암으로 절망하고 사는 사람들과 희망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는 1998년 봄 유방암 전문클리닉을 운영하는 임재양 외과원장이 유방암 환자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임 원장과 함께 건미회 결성, 초대 회장을 맡았다. 그래서 환자들끼리 서로 만나 정보도 교환하고 투병의 고통도 함께 나누는 모임이 필요했다. 마음이 맞는 회원들끼리 등산도 가고, 거림낌없이 공중 목욕탕도 함께 가고, 매월 두차례 모임을 갖고 간호사나 전문의를 초청해 투병의지를 키우고 있다. 처음 100여명으로 출발한 모임이 지금은 2배로 늘었다.

"아직까지 자신의 병을 숨기며 지내는 유방암 환자들이 많습니다. 암의 공포보다 더 두려운 것은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노씨는 "암은 불행이 아니라 단지 걱정거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종균기자 healthc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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