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새삼스럽게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서야'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우리는 눈치 보며 살 수밖에 없는 충성스러운 들쥐'라고 비하하면서 자괴감을 털어 놓았지만, 왠지 그 같은 그늘 속에서 조금도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아 우울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이 같이 돌아가는 모습을 우려하고 안타까워 한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 가고 있다고 개탄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패거리 문화'와 '줄 서기' '줄 대기'로 치닫고 있으며, 부정하든 긍정하든 끊임없이 그런 강요에 빠져들면서 떠밀려 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떨칠 수 없다.
경제적 상황은 물론 정치 현실이 나아지기는커녕 깊은 상처처럼 덧나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의 일상도 어쩔 수 없이 같은 궤도에서 헛돌기만 한다. 어떤 줄이든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어느 패거리에 발을 담그고 충성을 다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잘 서고 잘 댄 줄인지, 불안해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느 조직에 들어갈 때나 들어가서도 줄을 서야 한다. 거역하면 밀리거나 '왕따'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그 양상이 교실에선 폭력으로 이어지고, 일터에선 실직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옳고 그름의 향배마저 힘의 논리에 좌우되는 감도 없지 않다. 우리는 경쟁에 이겨야 하고, 상대 패거리의 불행이 자기 패거리의 행복이 되는 '삭막한 풍경' 속에 내팽개쳐져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대 폐지론이 나오는 등 학벌 중시 풍조가 낳는 폐해에 대한 논란도 그런 맥락에서 비롯되고 있다. 어떤 대학 교수는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는 책에 이어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를 출간해 화제를 낳고 있다. 그는 그 폐해를 대학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는 신분제적 가치와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 사회적 권력의 배분이 파당적으로 분배되는 붕당적 사회, 부와 권력을 소수 학벌 집단이 차지하는 독과점 사회, 학벌이란 집단적 편견이 문화·심리적 갈등을 빚어내는 갈등의 사회라고 지적한다. 그 중에서도 학벌 사회는 가장 큰 문제다.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대물림시키면서 패거리 문화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학벌로 능력과 인격이 재단되는 비합리·불합리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술과 아이디어 하나로 승부를 건다'는 벤처기업마저 예외는 아니며, 행정부 요직 등 공직사회 역시 다르지 않다. 젊은이들이 이 땅에는 미래가 없다며 해외로 떠나는 '교육 엑소더스'도 능력보다는 간판을 중시하는 '학벌주의의 거품'이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명문대=성공'이라는 공식을 풀어내기 위해 공부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입사 지원서를 써도 학벌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고시 제도도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학력 사회, 학벌 사회, 고시 제도의 문제점을 푸는 게 선결 과제가 아닐는지. 일류 대학을 나오는 것이 사회적 성공의 기본 조건이고, 한번의 시험으로 평생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리는 고시 제도가 있는 한 그 어떤 대안도 무색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교육은 이 때문에 권력의 모태가 되고 있다. 뜨거운 교육열도 따지고 보면 권력욕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학벌주의는 '패거리 문화'를 수반한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인격이나 능력보다는 동문이라는 사실 하나가 사람에 대한 평가와 판단의 기준이 돼서야 되겠는가. 이런 구조 속에서는 어느 분야에서 활동하든지 권력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바로 이 '힘 있는 패거리' 안에 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 능력이 두드러지면 되레 '왕따'를 당하거나 밀리는 수도 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류 대학 출신들 뿐 아니라 이에 맞서야 하는 다른 대학 출신들의 '뭉치기' 현상에로의 비화도 간과할 문제는 아니다. 결국 학벌주의와 '패거리 문화'는 온 나라를 극단적인 소집단주의와 이기주의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한국판 카스트 제도'의 노예로, 덧나기만 하는 '패거리 문화' 속에서 살아가야만 할지. 그 끝이 보이는 날이 언젠가 오기는 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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