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영 왕자의 짠돌이 여행

입력 2001-04-21 00:00:00

얼마전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사냥터에서 살아있는 꿩 목을 비트는 장면의 사진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었다. 그 당시 동물 애호가들은 여왕의 무자비하고 품위없는 처사에 항의하며 '동물학대'의 극치라고 규탄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꿩목비틀기는 수렵장에서의 관행이라니 그렇다치더라도 사실 영국 황실의 인기는 요즘 바닥을 치고 있다. 별로 하는 일 없이 거액의 국가 예산을 타먹으며 흥청대는 왕실이 중과세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겐 탐탁할리 없다. 그런 터수에 한술 더 떠서 찰스 황태자와 앤 공주, 마거릿공주(엘 리자베스 여왕의 동생) 등이 잇달아 틈만 나면 스캔들을 벌이니 국민들이 군주제 폐지론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번에 모처럼 한국을 찾은 앤드루 왕자(요크공작)는 우리가 생각하듯 '하는 일 없이 흥청대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6.25전쟁 참전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차 부산을 찾은 그는 웬만한 국내외 귀빈이면 으레 투숙하는 롯데호텔의 로열스위트룸(300만원)을 마다하고 프레지덴셜스위트룸(150만원)에서 묵었고 식사도 2만원짜리 이하의 소박한 것으로 떼워 넘기는 검소한 모습이었다. 대사관 직원 만찬비용과 49명의 수행원 투숙비 등을 모두 포함 이틀간 1천300만원의 경비를 썼다는 것이다. 호텔측은 앤드루 왕자의 투숙을 계기로 1천 송이의 장미로 호텔을 치장하는 등 '특수'를 노렸지만 '짠돌이' 왕자의 절약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앤드루 왕자는 지금까지 22년동안 영 해군에 복무중이다. 지난 82년 아르헨티나.영국간 포클랜드해전 때 영국 전투기 조종사로 일선에 참전했던 역전의 용사이기도 하다. 당시 왕자를 귀국시키라는 영국민의 여론이 비등하자 엘리자베스 여왕은 "앤드루는 포클랜드 전투사령관 휘하이지 버킹엄궁의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이를 점잖게 거절, 노블리스오블리제(지도계층의 도덕적 책무)의 귀감으로 칭송 받았던 주인공이다. 결국 영국 왕실이 그토록 국민들에게 신망을 잃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이러한 검소함과 노블리스오블리제의 정신때문이 아닐까. 대략 8조원의 재산으로 추정되는 영 왕실의 왕위계승 서열 4위 왕자의 짠돌이 여행- 틈만나면 흥청대는 졸부들이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었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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