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에 있는 사적 제119호 송학동고분군(松鶴洞古墳群)은 일본사람들에게 더 잘 알려진 고분군이다. 일본의 대표적 고분인 전방후원분과 형태가 유사하다는 학설이 제기되면서 일본학자들이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部說)의 주요 근거 중의 하나로 제시하며 한일 양국 학계의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국내 학계에서 고분군 정비복원을 위한 학술조사를 벌인 결과 일본측의 주장과는 달리 6세기 전반 가야시대의 전형적인 석관묘로 추정된다는 1차 결론이 나오면서 최근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과 함께 다시한번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곳이다.
기자가 대구문화재지키기시민모임(공동대표 김계숙.석대일)과 함께 송학동고분군을 찾은 것은 지난 10일. 동아대 박물관의 시굴조사에 이은 1차 발굴작업이 마무리 된 고분군은 봉분 여기저기에 절토작업이 이루어진채 정확한 유형과 성격규명을 위한 2차 정밀발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민모임과 취재팀이 동아대 박물관측에 그동안의 발굴현황을 확인할 결과, 송학동고분군은 앞쪽이 네모나고 뒤쪽이 둥근 외형이 고대 일본 지배층의 전형적인 무덤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과 같다는 일본 사학계의 주장을 일단 부정하고 있었다.
송학동고분군은 전방후원분이 아니라 3개의 원형 분구가 서로 이어진 것으로 가야시대의 전형적인 석곽묘로 확인됐다는 것. 다만 남쪽 봉분이 높고 북쪽 봉분이 낮은데다 도굴로 봉분 정상부가 심하게 훼손돼 외형상 전방후원분과 유사한 형태를 띤 것이었다는 설명.
또 지난해 10월 마무리 된 1차 발굴조사 결과 전형적인 고분축조 방식도 밝혀졌다.분구(墳丘)를 먼저 쌓고(造山) 그속에 석실을 배치하는 형태이다. 또 석실내부가 붉게채색된 것은 가야지역은 물론 삼국시대 고분에서도 처음 발견되는 것으로 당시의 고분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부장된 유물의 특징으로 미뤄 신라와 일본과도 교류한 흔적이 나타나고 있으며, 소가야의 멸망시기와 고분의 축조시기 등을 감안하면 소가야 마지막 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는 조사결과도 제시했다.
문화재지키기시민모임의 지도교수인 양도영 영남대 박물관 학예연구원은 "송학동고분 제1호분은 고분의 정비복원에도 발굴결과를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며 "한일간의 고대사 논쟁에 너무 집착한 복원에 과장이나 왜곡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송학동고분군이 전방후원분이라는 주장을 처음 제기한 것은 정신문화연구원의 강인구 교수였다. 강교수가 지난 1983년 영남대 재직시 함안의 말이산고분, 거창의 동부동고분, 의성의 탑리고분 등을 들며 "한국에도 전방후원분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성 송학동고분"이라는 주장을 했던 것. 이에 일본 사학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이를 임나일본부설의 한 근거로 끼워맞춘 것이다.
송학동고분군은 과연 한국형일까 일본형일까. 오는 5월부터 보다 정확한 실체파악을 위한 2차 발굴조사에 들어가는 동아대박물관팀은 한일고대사의 핵심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추가로 찾아낼 수 있을까.
그러잖아도 일본의 교과서 왜곡으로 국민감정이 뒤숭숭한 요즈음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확실하게 뒤엎을 수 있는 조사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며 문화재지키기시민모임은 발길을 돌렸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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