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그 웅현의 덩어리목련꽃 덩어리가 가장 빨리 몸져 누워버린 늦봄이다.
먼 산은 녹빛을 띠고 녹차의 향기로 뻗어내린 녹빛 꽃밭으로 물든 산이다. 연한 나뭇가지에는 섬 초롱 꽃잎에 둘러앉은 새들이 옹기종기 잔치를 열고 있다.
오월을 안고 오는 가슴속에는 윤 사월의 잔영이 쉼표와 느낌표처럼 다가왔다.
애기붓꽃이 늦잠 자는 계절이 아니었던가.
우산 풀잎에 넌지시 손가락이 긁힌 아픔도 새끼소 발 아래 밟히고 아이들의 심심풀이로 뜻없이 날아가는 우산풀, 저 풀잎, 들꽃들의 생명력에 마음을 달래본다.부활초처럼 다시 피고 온 몸으로 살아가는 풀꽃들의 더운 가슴속을 나는 알기나 알 수 있을까. 일상을 다시 뒤집고 나를 거꾸로 살게하는 저 더운 생명의 다스운 피, 생명의 더운 피로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보고 웅혈을 풀어 본다.
◈청록 빛, 꿈을 키웠던 시골 역
시골 역 홈으로 기차가 청록빛 꿈을 키우는 아이들 곁으로 덜커덩, 덜커덩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시골 논둑길을 지나면서 철길위로 눈물 글썽이며 눈물나는 기막히던 사연들이 기차 곱배처럼 길었던 것은 아닐까.
회자정리(會者定離), 희망과 슬픔을 끌어안고 다녔던 저녁 기차는 검은 광목 보자기처럼 어디서 펄럭이고 있을까.
◈마음의 작은 표현 다듬기
마음의 작은 표현들을 찾아 사람과 사람의 틈새를 비집고 바람 부는 날 삶에 바람이 부는 날, 마음의 창을 열고 자연의 원시림이 묻어 있는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인 경북의 가장 작은 역 승부역이나 강원도의 구절리역을 혼자 훌쩍 떠나 버리고 마는 것이다.
간이역에는 읍이나 면 단위의 마을이 있다. 간이역에는 옥수수 알맹이 같은 순정이 시심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황량한 갈대밭에 지는 노을을 보고 고즈넉한 사랑의 시를 생각한다. 구절리역에는 구절초가 피고 고향으로 열린 창이 보이고 잊고 살아왔던 향수가 배어나오리라.구절리역에/구절초 꽃이 피었다/게으른 들판을 걸으면서/
돌과 잡초 속에서/구절구절 가난이 도둑과 같이/
구절구절 돌아보는 삶과 같이/구절리 역에는/
섣불리 인생과 술과 시에/대하여 사랑했다고 言說하지 마라/
구절리 역에는/구절초 꽃잎이 떨어진다/
구절리 역에는/구절구절 많은/구절초 꽃 같은 사랑이 숨어 있다.
(구절리 역 전문)
일상의 일탈을 꿈꾸어 오면서도 일상의 나태와 권태, 관습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얼마나 혼자 마음속으로 다짐하여 왔던가. 몸이 편한대로 몸을 끌고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유혹속에서 나를 버려왔던가.
헛것을 보고 헛 살아온 안동 헛제삿밥 같은 밥을 먹고 헛것에 눈뜨며 헛것에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달래면서도 항상 오는 내일의 망상에 오늘을 구겨놓은 것이 못내 마음이 아프다.
아, 오늘을 사랑하며 지금을 아끼자. 지금의 사람들과 지금의 시간과 소중한 인연을 사랑으로 기억하자.
간이역을 찾아가는 마음은 안정된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삶은 영원한 도정에서 끝나고 말지만 오늘 하루가 종점이 아닌 시작이듯이 간이역과 같은 안정된 내 마음의 역이라고 생각한다면 일상에서 버려지는 작은 소모품이라도 소중히 생각하자.
희망과 기쁨이 숨어 있었던 저녁기차 소리를 들으며 숯검정이 얼굴을 한 악동들은 철모른 희열과 장난으로 청록빛 푸른 꿈을 키웠다.
작은 가슴속에는 마른 풀 섶, 마음의 어룽을 지워 주고 풀꽃의 속삭임에 지평선 끝까지 치자꽃 사랑을 찾으러 하염없이 헤맸던 시골역, 이름 없는 간이역을 따라 병아리 가슴털 같은 시심을 돋우어 내고 싶다.
가슴속에는 회한과 앙금이 달라붙어 자신의 끝없는 물음표를 걷어 내지 못하고 내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간이역을 찾아 나선다.
그것도 지천명을 넘어 곤혹을 느끼는 삶의 한켠에 비껴나 읍내의 작은 역을 찾아 주말에는 기차를 탄다.
◈삶, 꽃 멀미, 그리운 사랑
간이역에 우두커니 서서 상큼하고 달디 단 바람을 마시며 지난 겨울 유난히 눈이 많았고 추웠던 겨울을 생각한다.
풀 섶 어딘가에 인고의 죽순과 쑥갓과 제비꽃이 함초롬히 피어 있다. 존재함, 끈질긴 생명 있음이 그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푸른 별들로 가득찬 봄밤의 낭만, 가슴 뭉클한 봄밤의 話頭를 생각하며 시심을 쫓아 주말이면 이동전화기를 끄고 간이역을 찾아 나선다.
또 오는 주말에는 이슬이 소리 없이 뒹굴 듯 세월의 영마루를 뒤켠에 남겨 두고 바다가 있는 역을 찾아 길 떠나야겠다.
푸르고 아름다운 삶, 꽃 멀미가 그리운 역을 찾아 내 몫으로 부여된 짧은 시간을 더욱 그리워하며 청록 빛 봄을 껴안고 싶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