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 속 사교육비 부담 겹고통

입력 2001-04-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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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인 예진(여.대구시 수성구 범어4동)이는 매일 아침 10시 영어유치원에 간다. 오후 3시 유치원을 마치면 남동생과 함께 한 사설교육기관의 체육수업, 오후 4시 피아노학원, 5시 무용학원으로 이어진다. 예진이는 "피아노와 무용엔 관심이 없지만 엄마가 '여자는 이것을 꼭 해야 한다'고 해서 다닌다"고 말했다. 저녁을 먹은 예진이는 잠시 동생과 TV만화를 보고난 뒤 오후 8시쯤 집으로 찾아온 영어교사에게 영어를 배우고 밤 9시쯤에야 과외행군이 끝나고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예진이 엄마 박모(34)씨는 "매일 피곤해하는 아이를 보면 안쓰럽지만, 장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참는다"고 말했다. 박씨 남편의 한달 수입은 250만원. 이 중 영어유치원비 43만원, 체육수업비 19만원, 피아노 20만원, 무용 10만원, 영어과외 6만6천원 등 예진이의 한달 사교육비로 98만6천원을 쓴다.

초등학교 5학년 김모(12.대구시 수성구 범어동)군은 놀 시간이 없어 늘 불만이다. 학원을 찾아다니다 보면 하루가 끝나기 때문. 김군이 다니는 학원은 영어, 예능(피아노), 수학, 과학영재, 국어(논술, 책읽기) 등 5개. 게다가 친구 4명과 함께 중학교 진학에 대비한 '선수학습'이라는 그룹과외까지 받고 있다. 김군의 어머니는 "애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알지만 이것저것 다 시켜봐야 어떤 소질이 있는지 알 수 있다"며 "대부분 학부모들이 이 정도는 과외를 시키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00년도 전국 초.중.고등학생 과외비 실태조사결과' 대구의 과외비율이 65.5%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저금리, 고물가속에 가정마다 허리띠를 졸라매지만 자녀들의 과외를 위해선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가장의 수입만으로는 사교육비를 충당할 수 없자 주부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는 게 사회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지난달부터 컴퓨터 그래픽 학원에 재취업한 주부 박모(34.대구시 달서구 용산동)씨는 "늘어만 가는 아이들 과외비 때문에 5년전 그만뒀던 직장에 다시 나가게 됐다"며 "한달에 90만원을 벌 수 있어 그나마 도움이 된다"고 했다. 또한 과외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부모들이 직접 과외를 하는 경우도 있다.

사교육이 붐을 이루면서 교사들은 수업진행에 애로를 겪고 있다. 대구지역 모여중 김모(32) 교사는 "대부분 학생들이 학원에서 예습을 하고 오는 상황에서 어느 기준에 맞춰 진도를 나가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새교육시민모임 오미경 상담실장은 "과외수업 받는 아이들은 대체로 학교공부에 만족을 못하고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공교육이 붕괴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hc@imaeil.com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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