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우리 아버지 맞심더

입력 2001-04-10 14:58:00

요사이 금리가 낮아 전세를 놓던 사람들도 사글세나 월세로 바꾸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세 살던 사람이 사글세나 월세로 살게 되면 생활이 더 곤궁해지고 자기 집 마련 또한 쉽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세들 사람이야 전세를 원하지만 세놓을 사람이 월세를 놓겠다는데 어찌하겠는가. 전세 기한이 끝나 본의 아니게 이사를 가야하는 현실을 보니 결혼해서 사글세 살던 때가 생각난다.

결혼한 첫 해 열달을 계약하고 사글세를 살았다. 그런데 집주인이 전기세 등 공과금을 너무 많이 달라고해서 망설이다 용기를 내 고지서를 보자고 했더니 고지서를 보여주지는 않고 기한도 되기 전에 당장 집을 비우라고 요구했다. 억울함도 있지만 주인이 나가라니 나가는 수밖에. 다른 방을 얻기 위해 한달 말미를 얻어 살고 있던 어느날 밤 대문 앞이 왁자지껄해 나가보니 주인집 딸이 계속 "우리 아버지 맞심더"하며 울고 있었다.

사연인즉 밤 12시가 넘어 귀가한 주인아저씨가 초인종을 계속 눌렀으나 대문을 열어주지 않자 자기 집 담을 넘다 마침 지나가는 취객이 도둑인 줄 알고 영웅심을 발휘해 끌어내리면서 시비가 붙었다는 것이다. 따귀를 맞은 주인 왈 "내 집에 내가 들어가는데 왜 때려 이 놈아"하며 취객의 멱살을 쥐니 취객은 "어느 놈이 자기 집을 월장하나, 에잇 도둑놈"했단다. 주인은 "내 집이면 어쩔래"하며 대문을 쾅쾅 차니까 그제야 주인 아주머니와 두 딸이 나와서 아버지가 맞다고 확인시켜준 웃지 못할 이야기다.

15년을 넘게 전세를 놓고 살고 있지만 처음 사글세 살다가 쫓겨났던 때가 생각난다. 내 집에 들어와 집을 사서 이사를 가거나, 세든 사람의 사정 때문에 이사갈 때까지 나가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요즘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가진 사람이 베풀면서 산다면 한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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