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신씨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

입력 2001-04-10 00:00:00

전국의 고찰들을 수묵화와 담백한 기행문에 담은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도서출판 해들누리)는 마치 전문가가 손잡고 현장을 이끌어주듯이 그렇게 푸근하고 따사롭게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경북 평해 출생(1957년)으로 동국대 교육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작가 이호신(李鎬信)이 쓰고 그린 이책은 한권의 화첩이자 사찰 순례기이며, 사람사는 법도를 은근히 안내하기도 하다.

육안으로는 물론 항공사진으로도 미치지 못할 부석사 전경을 한눈에 보는 감동, 불국사의 석축을 일목요연하게 조망하는 신비로움. 작가는 이같이 아름다운 우리 산천과 곳곳에 꽃처럼 피어난 가람의 향기를 찾아 십수년 동안 베낭속에 붓과 묵즙을 넣고 인연이 닿는 절마다 머무르며 그림을 그리고 답사일기를 써왔다.

작가는 그러나 단순히 관찰자로서만 절집에 머물지 않았다. 새벽 예불에 참석하고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의 뭇별들을 올려다보면서 살피고 듣고 느낀 것들을 놓치지 않고 화폭에 꼼꼼히 담고 글로 세세히 옮겼다. 그래서 작가의 글과 그림에는 역사와 현재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한다.

강우방 교수(이화여대·미술사)는 "18세기의 진경산수화와 풍속화의 정신이 되살아난 느낌"이라고 했으며, 최창조 교수(경산대 풍수학과)는 "'산천은 둥지이고 가람은 둥지에 싸인 알'이라는 작가의 표현은 가히 풍수의 요체를 꿰고 있다" 분석했다.

한해가 다르게 찻길과 주차장이 들어서고 무모한 불사로 가람의 원형이 무너지는 현장을 목도하고 안타까워한 작가는 지켜야 할 가람의 향기를 화폭에 담아 이웃에게 회향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산사에 뜨던 별과 달빛, 그윽한 새벽 예불과 범종소리, 장엄한 일출과 일몰,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가난한 영혼을 일깨워 준 나날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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