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땅의 철학은 실천이 없다

입력 2001-04-09 14:22:00

"철학은 성찰보다는 실천입니다. 문제를 직시할 때 어떤 식으로든 타개책을 강구할 수 있습니다."

안동대 국학부 윤천근(45.동양철학전공) 교수가 우리의 철학과 가치에 대한 그릇된 풍토를 신랄하게 비판한 철학 수상집 '이 땅에서 우리 철학하기'(예문서원 펴냄)를 출간했다.

학문하면서 시종 사로잡혀 있는 몇가지 화두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담아 조목조목 정리한 이 책은 지식주의, 권위주의에 물든 철학계, 철학하기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노정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저자의 화두는 철학, 생존, 자본주의, 국학 등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철학풍토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윤 교수는 먼저 현 시점 한국에서의 철학은 너무나 고결해 쉽게 이해할 수도 없고, 접근할 수도 없다고 자조한다. 왜 그런가? 저자는 대답은 이렇다. 무엇보다 어떤 철학자의 철학 체계야말로 철학이자 진리라는 환상에 지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철학은 제쳐두고 어떤 철학자만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섬긴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사람에게는 관심도 없이 발자국만 찾아 돌아 다니는 꼴"이라고 그는 비판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윤 교수는 '길을 가다 조사를 만나면 조사의 목을 치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의 목을 친다'는 선가에서 즐겨 하는 말을 들어 "진리와 대면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혼자서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철학자들로부터 얻은 실마리를 통해 진리에 이르는 자신만의 길을 열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윤 교수는 우리의 철학을 단적으로 '강단철학'이라고 표현한다. 철학 전공자들의 수중에, 철학 귀족들의 지식과 글 속에, 서양에서 수입해 앵무새처럼 되뇌며 전해주기에 급급했던 철학 전도사들의 교과서 속에 철학이 있다고 질타한다.

'어떻게 다시 시작할 것인가'라는 대안도 빠트리지 않는다. 그는 먼저 '백설공주(고결한 철학) 죽이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철학의 순수성, 권위성을 뒤엎고 대중 곁으로 친숙한 얼굴로 다가가는 철학에 대해 힘줘 말한다.

윤 교수는 이 책에서 '철학 하기'의 해법을 내놓는다. △순결주의에서 벗어나라 △엄숙주의로부터 탈출하라 △학문만이 가치 있다는 신앙을 깨뜨려라 △논리와 체계로부터 자유로워져라 △논술식 글쓰기의 전형을 파괴하라 △보편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말라 △객관의 절대성을 믿지 말라 △주석(註釋)속에 숨지 말라 등으로 요약된다. 즉 철학은 개똥이다. 철학은 개똥처럼 낮고, 개똥처럼 값없고, 개똥처럼 작은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충고다.

하지만 이런 주장 뒤에는 저자의 솔직한 고백도 깔려 있다. 철학자로서 허약한 실천력에 대한 부끄러움을 그대로 털어놓고 있다. 저자는 "글을 통해 육성이 너무 노골적으로 표출돼 일부 독자들로부터 반감을 살지도 모르지만 솔직한 육성을 담아내는 것이 글쓰기의 목표로 삼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윤 교수는 그동안 '퇴계 철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노.장 철학의 현대적 조명' '새로 보는 노자도덕경' '유학의 철학적 문제들' '섹스 이전에 성이 있었다' 등 많은 저서를 내는 등 활발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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