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역사 왜곡의 저의

입력 2001-04-04 14:52:00

일제 침략사실을 미화한 문제의 교과서가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함으로써 일본 우익진영의 왜곡된 역사관(歷史觀)이 결국 일본 중학생에게 그대로 '세뇌'될 수 있는 위험한 역사인식의 길이 열리게 됐다.

3일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의 역사교과서는 검정 과정에서 한일합병 및 중국 침략 관련 부문 등 137곳을 수정, 최종 검정을 통과했으나 태평양 전쟁의 피해자로서 일본 입장을 부각시키는 등 교과서 전반에 걸쳐 왜곡된 역사인식을 여전히 담고 있어 논란을 낳고 있다.

◇역사 교과서 문제부분='새역모'가 제작한 역사교과서는 △군대위안부 문제를 기술하지 않는 등 일제의 가해자 행위에 대한 취급을 최소화했고 △조선의 군제개혁 지원이 조선 근대화와 독립을 위한 것으로 기술했으며 △태평양 전쟁의 피해자로서 일본의 입장을 부각시키는 등 교과서 전반에 걸쳐 가해사실을 축소 또는 삭제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이 교과서는 한일합병 부분과 관련해 한국내 반발 무력진압, 식민지배, 동화정책 등의 내용을 기술해 상당부분 사실(史實)에 근접했으나, 일제의 철도, 관개시설 개발 등의 내용을 보탬으로써 일본의 한반도 강점이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듯한 암시를 했다.

또 고대사 부분에서 '야마토(大和)조정은 반도(한반도) 남부의 임나(任那)라는 곳에 거점을 둔 것으로 여겨진다'며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여전히 주장했으며, '신라와 백제가 일본에 조공을 바쳤다'고 기술했다·도쿄서적 등 기존 7개 교과서들도 지난 97년 교과서에 실렸던 일제에 의한 군대위안부 동원 등을 삭제하거나 거의 언급하지 않는 등 가해사실을 대부분 삭제 또는 축소했다. 특히 7개 교과서는 종전에 '아시아 제국에 대한 침략' 사실을 기술했으나, 이번에는 일제히 침략이라는 용어를 삭제하거나 '진출'이라는 용어로 표현을 완화, 침략전쟁을 간접적으로 정당화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이와 함께 기존 교과서들은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 내용에서 의병사진을 삭제하거나, 중국 난징(南京)사건을 종전 '난징대학살'에서 '난징사건'으로 바꾼 것은 물론 불과 2개 교과서만이 희생자 수를 언급하는 등 가해사실을 축소, 외면했다.

그러나 기존 교과서들이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강요 등의 내용을 유지한 것은 긍정적인 측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배경=문제의 교과서 검정통과를 사실상 문부과학성이 주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문부과학상은 98년 당시 문부상일 때 국회에서 "현행 역사교과서는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역사를 부정적으로 적고 있다" 고 기존 교과서를 공격한 바 있다.

그는 이후에도 "검정은 집필자의 사상이 아니라 내용을 갖고 한다" 고 말하는 등 '새역모' 측을 지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교과서 검정통과의 주역은 지난 90년대부터 역사재평가 운동을 추진해온 우익진영 들이다.

이들 단체는 제2차 세계대전 책임을 인정하는 기존의 역사교육을 '자학사관' (自虐史觀) 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역사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90년대 중반 새 역사 교과서 운동을 주장한 후지오카 노부가쓰(藤岡信勝) 도쿄(東京)대 교수는 "기존의 역사 교과서는 일본이 대륙침략에 착수, 이웃 국가들을 짓밟고 전쟁으로 국민을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며 이같은 '자학사관'에서 탈피하자고 촉구했다.

후지오카를 비롯한 우파 학자들은 자신들의 역사관을 '자유주의 사관'이라 부르며 97년 '새역모'를 결성했다.

◇의미=2차대전 발발의 당사자로서 정부는 물론 국민 대다수가 반성과 참회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독일과 달리 일본 기성사회의 '파렴치한' 역사인식이 일본 청소년들에게도 그대로 투영될 위험이 점차 높아지게 됐다. 일본 청소년들마저 왜곡된 역사인식에 물들 경우 향후 야기될 한·일간 반목과 적대감은 세대를 이어 더욱 깊어질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문부과학상은 담화를 발표, "검정은 '근린제국 조항(근·현대사 기술에 주변국을 배려해야 한다는 기준)'을 충분히 배려해 실시됐다"고 밝히고 "다만 역사 교과서 검정은 국가가 특정한 역사인식이나 역사 사실을 확정하려는 입장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다"며 '새역모' 교과서의 합격 처리가 불가피했음을 주장했다.

정부 대변인인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도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에 고통을 주었다는 95년 무라야마 담화 당시의 정부 인식에 아무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은 실무적 기준에 불과한 검정제도를 절대적 한계로 못박아 스스로를 그 속에 몰아넣었다.

주변국이 요구한 것은 '대승적 결단'이었으나 일본은 실무적 울타리를 뛰어넘길 거부했다. 82·86년의 교과서 파동 때 국제여론을 감안한 정치적 판단이 가동됐던 것과 대조적인 것이다

교과서 문제가 이제 채택전이라는 제2막으로 넘어가게 됨에 따라 '역사모'가 목표한 대로 '위험한 교과서'의 내년도 채택률이 10%를 넘어설지 여부가 주목된다.

이번 문제교과서의 검정통과는 일본 사회 분위기가 종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일본내 일제침략사에 관한 역사수정 운동이 우파 정치인과 매스컴의 지원을 받아가며 지금처럼 대대적으로 펼쳐지는 것은 80년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과거 우익은 국제사회 눈치를 보아가며 한쪽에서 소곤거렸으나 지금은 거리낌없고 당당해졌다. 이번 교과서 파동 때 우익단체들은 주변국 우려를 '내정간섭'으로 몰아붙였다. 우익단체들의 극단적인 주장이 대중 속에서 통용될 만큼 일본사회가 '집단 최면'의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교과서 문제는 한·중·일간 상시적인 외교마찰의 원인으로 부각된 만큼 한국, 중국 등 주변국 대응도 일회성에서 벗어나 장기적·전략적인 관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류승완기자 ryusw@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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