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소리

입력 2001-03-30 14:46:00

어쩌다, 정말 어쩌다 학교 도서실 일을 맡은 게 햇수로 8년째다. 사서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독서에 대한 특별한 신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 내가 이 일에 짧잖은 시간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이 남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리라. 아이들과 함께 도서실 가득한 먼지를 털어내던 일, 시내 서점에서 읽을 만한 책을 찾는다고 아이들과 법석을 떨던 일, 학교 실정에 맞는 도서관리 프로그램을 만들던 일… 지나고 보니 시행착오의 연속이기도 했다. 나 대신 문헌정보학과 출신의 사서교사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역 대학 중 문헌정보학과가 있는 대학은 경북대.계명대.대구가톨릭대.대구대 등 4개나 된다. 매년 수십명의 졸업생이 배출된다. 그리고 대구에는 400여개의 초중등 학교가 있다. 그런데 사서가 있는 학교는 단 한 학교 뿐이다.

수업도 맡으면서 도서실을 운영해야 할 처지에서는 전산화가 필수이다. 공공도서관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너무 어려워 우리 학교에서 별도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것을 지금은 다른 스무 개 학교가 사용하고 있다.

그러던 중, 올들어 이 프로그램을 웹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버전업 시켜야 할 상황이 닥쳤다. 프로그램을 교체하려니 모든 자료를 다시 입력할 수밖에. 입력해야 할 책이 1만 권이나 돼 버겁다. 전문 업체에 위탁하려니 도서실 1년 예산에 버금가는 돈과 몇달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꾀를 냈다. 이웃 대학에서 실습생을 받기로 했다. 나와 처지가 비슷한 대구중등학교 도서실연구회 회원들도 마찬가지. 그러나 실습생이 몇명 안되니 그마저도 보통 힘드는게 아니다. 뻔한 학교 재정에 기대려 해 봤자 마음만 상할 것이 불 보듯 하다.

대구 시교육청 본관 건물에는 '책을 읽읍시다'라는 플래카드가 큼직하게 드리워져 있다. 승용차마다에는 '먼저 인사합시다'란 스티커가 붙어 있다. 거기에 드는 돈은 얼마쯤일까?

한 달에 50만~60만원으로 전산 보조교사나 업무 보조교사를 고용하지 있지 않은가? 몇몇 학교 일을 겸무하는 사서 보조교사도 있으면 좋겠다.

박홍진(대구 성화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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