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극성엄마'김정숙씨의 항변

입력 2001-03-29 14:06:00

'극성엄마'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는 사람 김정숙(41·대구시 달서구 대곡동)씨.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시아버지에게서도 종종 섭섭한 말씀을 듣는다. 이제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 매달 3,4개씩 과외를 시키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에게 3,4개씩의 과외가 좀 심하다싶지만 그녀에게도 할 말은 많다.

6학년인 동현이는 오전 8시 10분 학교로 출발해 오후 3시 20분 귀가한다. 청소 당번인 날은 4시쯤 돼야 돌아온다. 아이는 선 채로 샌드위치 한 조각을 서둘러 삼키고 4시 15분 아파트 앞에 도착하는 학원 버스를 타야한다.

속셈·영어·컴퓨터·뇌호흡까지 마치고 집으로 다시 돌아올 땐 밤 9시. 늦은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 오락을 하다 11시쯤 잠자리에 든다. 준비물은 내가 챙겨준다. 숙제 걱정은 없다. 동현이는 모든 숙제를 학교 수업시간에 끝낸다. 두 아이의 학원비는 월 평균 50만원을 조금 넘는다. 우리집 수입의 30%에 해당한다.

◈수입 30% 사교육비 지출

동현이는 4세 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원에 보내기엔 너무 어리다 싶었지만 하루 종일 나와 둘만 있으니 좀처럼 말이 늘지 않았다. 두 달쯤 학원에 보내자 말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 후로는 태권도·피아노·미술·속셈·영어·검도… 단 1년도 학원 과외를 빼먹은 적은 없다.

왜 그렇게 극성이냐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빈정거리기도 하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 남편은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 교육에 관한 책임을 모두 내게 전가했다. 늦게 귀가하는 남편이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사실상 별로 없다. 게다가 옆집 아이들도 대부분 3,4개씩 과외 수업을 받고 있어 머뭇거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동현이에게 동생이 생긴 후로는 너무 바빠서 경제적 부담을 무릅쓰고 본격적으로 학원엘 보내야 했다.

◈남편 "바쁘다" 책임 넘겨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놓고 하루 종일 느긋해 좋으냐고? 천만에 말씀이다. 노심초사, 피곤… 잠시도 편하지 않다. 낮잠을 자도, 시장엘 가도, 은행엘 가도 불안하다. 비싼 돈 들여 학원엘 보냈는데 열심히 배우기나 하는지, 뉴스에서처럼 학원 차에 치이지나 않았는지, 늘 불안하다.

그럼 집에서 직접 가르치라고? 세상 모르는 소리다. 너도나도 과외 공부를 시키는데 내 아이만 학원에 다니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아이들 공부도 많이 어려워졌다. 초등학교 문제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많고 종일 아이 공부에만 매달릴 형편도 못된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검도며 컴퓨터를 배워서 가르칠 수 있을 때까지 아이에게 크지 말고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다. 과외에다 학습지까지 받아보지만 동현이는 저희 반 42명중 중간쯤 실력에 불과하다. 학원까지 그만 둔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요즘은 학교에서도 아이들 수준을 상당히 높게 설정해 수업을 진행한다. 글자를 배우지 않고 입학하면 선생님들이 의아하게 여기는 실정이다.

◈못믿을 공교육 대안 수단

글쓰기와 피아노는 내가 직접 좀 가르쳐 본 적도 있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일정한 시간에 가르친다는 것도 힘들었고 아이 눈 높이를 맞추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아이가 잘 따라오지 못해 짜증만 돋구었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확실히 달랐다.

아이들은 놀고 싶은 법이라고?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힘없는 주부 혼자 아이 기분을 이해하려 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아무도 내 아이의 현재와 장래에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 당국은 물론이고 신문과 방송도 다를 바 없다. 내 아이가 세상의 주목을 받은 날은 초등학교 입학식 날 뿐이었다. 아마 앞으로 대입 수능시험 날 또 한번 세상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이 무자비한 무관심에 대항해 엄마가 나섰더니 모두들 '극성'이라고 몰아세운다.

어쩌면 전문가들 말대로 나는 무책임하고 게으른 엄마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를 직접 가르치려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대신 손쉽게 학원엘 보내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태권도가 3단쯤 되고 인터넷 홈페이지 정도는 너끈하게 만들 수 있는 엄마, 지름이 42㎝이며 중심각이 105°인 부채꼴 원의 넓이와 길이를 눈도 깜짝 않고 구할 수 있는 엄마라면 내게 돌을 던져도 좋다.

조두진 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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