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의 신비 '면역'이야기-(9)한의학의 면역관

입력 2001-03-27 15:22:00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같은 온갖 이물질들은 우리 몸을 끊임 없이 공격한다. 그런데도 우리가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이런 적군이 침입하면 자동으로 출동해 섬멸하는 면역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 '면역'이라는 용어는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건강과 질병을 해석하는 시각은 현대 면역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의학의 고전 '황제내경(黃帝內經)'은 질병의 발생을 인체 안의 정상기운인 정기(正氣)와 질병을 일으키는 외부 기운인 사기(邪氣)의 싸움으로 설명한다. 정기는 인체의 면역계를 의미하고 사기는 병원균인 셈이다.

0..보약보다 운동이 면역력향상 도움

한의학에서는 정기와 사기의 싸움의 양상에 따라 병에 걸리거나, 병세가 더욱 악화되거나, 아니면 병을 떨쳐 버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인식에 근거해 나온 것이 부정거사(扶正祛邪)의 치료 법칙이다. 정기를 돕는 동시에 사기를 제거해 병을 치료한다는 원리다.

많은 사람들이 면역력의 향상은 보약(補藥)만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오해다. 살찐 사람을 보자. 이들에겐 보약이나 음식보다는 운동이 면역력을 높이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정기가 사기를 이기지 못하는 경우, 보약으로 정기를 돕는 방법도 있지만 사기를 제거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치료일 수 있다.

0..위기가 강해야 병에 안 걸린다

사기의 침입을 방어하는 기운을 위기(衛氣)라 한다. 이 기운은 살갗이나 근육 사이를 순행하며 땀샘을 조절해 사기에 대항한다. 사기가 침입하면 즉시 위기가 일어나 서로 싸운다. 위기가 튼튼하고 사기가 약하면 사기가 침입하지 못하게 되고, 침입해도 발병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위기는 장기조직을 따뜻하게 해 보호하는 작용도 한다. 몸이 차가와져 생긴 감기에 따뜻한 성질의 한약을 처방하는 것은 약으로 위기를 보충해 주기 위함이다. 림프구, 백혈구와 같은 면역기구와 싸이토카인 같은 면역 물질이 체온을 올려 감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면역시스템의 작동원리와 같은 치료법이라 할 수 있다.

0..한복과 면역기능

특정 혈자리에 침 자극을 가했을때 면역세포인 T세포 비율이 많아지는 등 세포면역기능이 좋아졌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또 뜸을 놓았을 때 혈액에 침입한 병원균을 먹어치우는 대식세포의 탐식작용이 좋아지고 항체반응도 높아지는 것으로 관찰됐다.

흔히 감기에 등쪽의 대추(大椎)혈, 풍문(風門)혈에 뜸을 뜨는 것도 면역기능과 관련이 있다. 경락(經絡)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물질인 기혈을 운행하고 신체 각 부분을 조절한다. 막힌 경락을 뚫어 기혈의 흐름을 좋게 하는 치료법인 것이다. 한복의 옷깃 뒤쪽을 높여 목뒤가 완전히 덮히도록 한 것도 목 뒤쪽의 혈자리로 찬바람이 통하지 않도록 해 감기를 예방한 지혜였던 것이다.

0..면역반응을 높이는 양생법

1996년 경락에 자극을 가했을 때와 기 시술을 했을 때 자연살해세포의 암파괴율(세포독성효과)이 어떻게 바뀌는지 관찰하는 실험을 했다. 시술 후 암파괴율은 1.4배 증가했으며 1시간 뒤 정상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이 실험은 기공 시술이 비록 일시적이지만 면역증강에 기여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정신을 단련하는 수련법은 약물못지 않게 면역반응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리하게 땀을 흘리는 운동보다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동작이 이뤄지는 수련이 훨씬 효과적인 유산소운동이라는 평가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이 '활인심방(活人心方)'에서 소개한 배 문지르기나 어깨 움직이기 등은 면역증강에 도움이 되는 양생법이라 할 것이다.

글:이종균기자 healthcare@imaeil.com

도움말:권영규교수(경산대 한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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