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현장 르포

입력 2001-03-27 14:54:00

어둠이 짙게 깔린 27일 새벽 5시. 대구시 남구 대명동 안지랑 네거리에는 새벽 찬공기 사이로 두툼한 잠바차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하루 일거리를 찾아나선 40, 50대 일용직 노동자들.

"오늘도 허탕칠 건 뻔해. 그래도 이렇게 안나오면 누가 벌어. 5만원짜리라도 얻어걸려야 할텐데…". 20년을 노동판에서 살아온 문모(58.남구 대명8동)씨. 보일러 설비공인 그는 지난해만 해도 하루 10만원 벌이는 거뜬했다고 했다.

서구 북비산 네거리 인력시장도 새벽 4시부터 일거리를 찾아 나선 사람들로 붐볐다. 일하던 공장에서 1년전 해고된 김모(40)씨는 "새벽 4시부터 두시간 넘게 기다렸는데도 일거리가 없다"며 "한달에 기껏해야 서너번밖에 일을 못한다"고 울상을 지었다. 40년 동안 막노동을 했다는 박모(70)씨는 "요즘처럼 일거리가 없기는 처음"이라며 "어차피 일이 없을 줄 알지만, 추운 방에 있느니 거리에 피워 놓은 모닥불이나 쬐러 온다"고 말했다.

예년같으면 건설현장이 기지개를 켤 봄이지만 새벽 인력시장의 '시계'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다른 취업시장 역시 '캄캄한 봄'이다.

지난해 12월 삼성상용차에서 정리해고 당한 박모(32.대구시 동구 신암동)씨는 구청에 공공근로 신청도 해보고 노점상도 차릴 생각도 해봤으나 아직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박씨는 "결혼후 7개월만에 해고를 당해 살길이 막막하다"며 "아내도 재취업을 위해 컴퓨터 관련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며 한숨 지었다.

한때 실직자들의 '구원처'였던 공공근로사업은 올들어 신청자가 지난 해보다 두배 늘었으나 채용인원은 되레 절반으로 줄었다. 중구청 관계자는 "3월 공공근로 신청자가 601명이나 실제 채용은 28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서구청의 경우도 공공근로사업에 1천564명이 몰렸으나 일자리를 구한 사람은 절반에도 못미쳤다.

지난 99년 2월 경북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곽모(29.대구시 달서구 본리동)씨. 그의 직장(?)은 학교도서관이다. 매일 새벽 5시쯤 새벽별을 보며 집을 나와 도서관에서 19시간을 버티는 생활을 2년째 하고 있다. 힘든 취업준비보다 그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것은 학교게시판 채용소식란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 곽씨는 "집안형편도 어렵고 가족들 얼굴보기도 힘들어 막노동판에라도 나갈 생각"이라고 울적해했다.

오전 6시에 문을 여는 이 대학 도서관 앞에는 새벽 5시부터 장사진이다. 학교공부를 하는 대학생들도 있지만 취업준비생들이 대부분. 경북대 취업정보센터 한 관계자는 "잘 나간다던 공대, 상대도 요즘은 채용 의뢰가 절반으로 줄었다"며 "다른 계열은 학교에서 관심조차 두기 힘들 정도로 취업 의뢰가 끊어졌다"고 말했다.

대구시내 ㄷ용역업체 관계자는 "예년 경우 봄철에 하루 30여명 일자리를 구해줬으나 지금은 10명도 어렵다"며 "이런 상황이라면 조만간 회사가 문을 닫을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2월말 현재 대구지역 실업자수는 6만3천명, 실업률은 5.6%로 1월에 비해 3천명, 0.2%P 증가했으며 경북도 역시 1월에 비해 2월 실업자수가 3천명, 실업률은 0.2%P 늘었다.

모현철기자 mohc@imaeil.com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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