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논술-논술.심층면접

입력 2001-03-23 14:46:00

◈불안과 공격성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이 있다. 내가 어느 집 정원의 울타리를 따라 걷고 있으면 안에 큰 개가 짖고, 으르렁거리고 격노한다. 허옇게 드러낸 이빨을 그물 철망에 밀어낸다. 울타리가 없다면 분명 내 목덜미를 물려고 뛰어오를 것이다. 나는 그 사납게 날뛰는 개의 태도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을 뿐 아니라, 주저 없이 울타리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개는 주춤하면서 당황한다. 짖던 동작 때문에 계속 짖긴 하지만, 그 소리는 이전처럼 사납지 않다. 울타리의 불가침성을 무시하고 내가 울타리 안으로 들어올 것을 그 개가 미리 알았더라면, 그 개는 그렇게 사납게 짖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내가 문을 열자, 몇 미터나 도망을 가서 안전한 거리로 가 달라진 음조로 짖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또한 울타리나 창살 안에 있는 겁 많은 개나 늑대가 전혀 적의나 공포감을 드러내지 않다가, 문이 열리는 순간에 들어서는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때의 공격은 겉보기만의 공격이 아닌 세차고 위험한 것이다. 겁먹고 피하는 것, 그리고 왈칵 공격하는 것, 이 두 가지의 행동 양식은 서로 모순되고 서로 맞지 않은 듯이 보이지만 하나의 행동 기제로 설명될 수 있는 동일한 성질의 행동이다.

모든 동물, 특히 체구가 큰 포유류는 우세한 적과 만났을 때, 적이 어떤 거리 안으로 접근해 오면 즉시 도망을 친다. 이 거리를 헤디거 교수는 '도주 거리'라고 명명했다. 이 도주 거리의 크기는 그 동물이 적을 얼마나 무서워하느냐 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특정 동물의 도주 거리 내로 어떤 특정의 적이 들어왔을 때, 그 동물이 도망간다는 것은 거의 규칙적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적이 도주 거리 보다 훨씬 적은 어떤 거리 내로 들어온다면 그 동물이 도망을 가지 않고 이제는 오히려 적을 공격한다는 것도 언제나 규칙적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헤디거 교수는 이렇게 도망가기를 포기하는 짧은 거리를 '위기 거리'라고 또한 명명했다. 자연 상태에서 적이 이 위기 거리 내로 들어오는 일은 다음 두 가지 경우에만 발생한다. 첫째는, 우세한 적이 약한 동물을 습격했을 때다. 다시 말하면, 약한 동물이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적이 극히 가까운 거리로 접근해 왔을 때다. 둘째는, 그 동물이 막다른 골목에 갇혀 도망갈 수 없을 때다. 총 맞은 야생 동물을 추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는 지금 이야기한 행동 기제로 설명이 될 것이다. 위기 거리 내로 적이 들어감으로써 야기되는 약한 동물의 공격은 그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공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반응은 몸집이 큰 육식 동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나 독일에 있는 산쥐와 같은 작은 동물에게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궁지에 몰린 쥐처럼 싸운다'는 영국 속담이 말해 주듯, 궁지에 몰린 쥐의 성난 공격으로 빚어지는 싸움은 가장 치열한 싸움이라 하겠다. - 콘라트 로렌조, '솔로몬 왕의 반지'에서

불확실성 회피 경향이란 '사회에서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일에 대해 참는 정도' 또는 '한 문화의 구성원들이 불확실한 상황이나 미지의 상황으로 인해 위협을 느끼는 정도'라는 말로 정의된다. 이러한 불확실성 회피 경향이 강한 나라, 즉 불안 수준이 높은 나라들은 어떤 특징을 가질까?

이런 나라에서는 자살율, 알코올 중독율(혹은 술 소비량), 사고로 인한 사망률, 수감자 비율에서 모두 상위를 달린다. 우리나라는 이런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자살율이 높은 것은 세계가 다 알고 있으며, 알코올 중독까지는 안 갈지 몰라도 술 소비량이 엄청난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사고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것도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교통 사고율 세계 최고, 산업 재해율 세계 2위로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우리 한국의 모습이다. 사회가 불안하니까 그냥 마셔 대다가 걸핏하면 다치고 그러다 죽고 죽이며 사는 것처럼 보인다. 또 불안 수준이 높은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를 매우 강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도 우리나라에 잘 들어맞는다. 이런 문화권에서는 사람들이 의사표현을 할 때 목청을 돋우고, 탁자를 탕탕 치는 것처럼 격렬한 손동작을 하는 등 다소 과격한 표현을 서슴치 않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불안 수준이 높은 것은 바람직한 것이 결코 아니다. 지금 전세계에는 지역적으로 불안 수준이 높아 광신주의나 첨예한 긴장감이 생겨나고 있다. 불안 수준이 높을수록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 우리나라도 전쟁을 방지하려면, 특히 남북 대치에서 생겨나는 불안 수준을 낮추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 사회가 더 여유로와져 긴장이 다소나마 완화되어 서로를 인정하고 조금 다른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 최준식,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에서

◈생각하기

▲두 제시문을 읽고 한국인의 '불안'과 '공격성'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분석하고 줄친 질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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