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의 신비 '면역'이야기-(8)영양과 면역

입력 2001-03-20 15:42:00

유엔 FAO(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60억 세계 인구 중 8억 이상이 기아나 영양부족 상태에 놓여 있다. 농산물 생산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끊이지 않는 전쟁·내전 등 무력 분쟁이 식량의 원활한 수급과 산지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

이렇게 기아가 닥치면, 질병이 함께 찾아 온다. 영양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면역체계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붕괴되는 면역계

우리 몸의 세포는 매일 영양과 산소를 공급 받아야 유지되고 재생된다. 그렇잖으면 우리 몸을 지켜주는 면역세포 등 전체 면역계 기능이 동시적으로 떨어진다.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대식세포. 몸 속 혈액으로 병원균이 침투해도 곧 바로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왕성한 식욕으로 세균을 먹어 치우는 이 대식세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양이 실조되면 대식세포의 식작용이 저하된다.

영양이 부족하면 식세포의 수도 줄어 세균 제거작업이 차질을 빚게 된다. 식세포인 '호중구'는 영양 실조가 돼도 정상인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 제대로 늘어 나 주지 못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미생물이 침입, 감염이 생겼을 때 호중구는 즉각 증식해야 하지만, 영양이 모자라면 오히려 감소해 사람을 패혈증의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영양이 모자라면 면역세포를 양성하는 훈련소인 림프조직 또한 손상 받는다. 림프조직이 줄어들고, 특히 어린이에게서는 면역세포 성숙 기관인 '흉선'의 위축이 두드러진다. 기아에 빠진 어린이들이 쉽게 병에 걸리고 목숨을 잃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반란군 발생 위험도

우리 몸의 피부와 점막에는 세균·곰팡이 등이 살고 있다. 이들은 항균물질 등을 만들어 병원균의 정착을 방해하고, 우리 몸 스스로 만들어 내기 어려운 비타민K, 바이오틴, 리보플라빈 등을 합성하고 흡수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영양실조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지면 이 정상균총이 오히려 우리 몸을 공격해 폐렴이나 설사 등을 유발한다. 이것을 '기회감염'이라 한다.

위의 경우, 영양실조가 심해지면 위산 분비가 줄어, 강력한 위산에 포위돼 꼼짝 못했던 세균이 제세상 만난듯 증식해 소장 안의 점막으로 침투한다. 장관이 감염되면 영양 물질의 흡수를 제한해 영양 실조를 더 악화시킨다. 그렇게 되면 다시 감염을 일으키는 악순환에 빠져 든다.

◇발열 반응도 취약해져

우리 몸에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열이 난다. 열은 바이러스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와 싸우는 몸의 무기이다. 열을 올리면 바이러스의 활동이 무뎌지고 견디지 못하게 되는 것.

또 바이러스가 세포를 공격하면 그것에 대항해 염증 세포들은 싸이토카인이라는 독성물질을 분비, 이들을 물리친다. 열과 염증은 우리 몸의 방어작용인 것이다. 하지만 영양이 부실한 사람에게서는 이같은 방어적 반응이 약화될 수 있다.

또 면역계의 여러 물질들과 직접 혹은 간접적인 보완작용을 하는 혈장 단백질인 '보체'도 충분히 생성하지 못해, 쉽게 병에 걸리게 된다.

◇장수로 가는 식사법

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연구팀은 60~80세 할머니 75명, 20~40세 젊은 여성 35명 등을 모집해 혈액검사를 해 봤다. 그랬더니, 영양상태가 좋은 할머니들은 젊은 집단 못잖은 면역기능을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 나이가 들면 면역기능이 쇠퇴한다는 기존의 가설을 뒤집는 연구 결과였다.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 줄 수 있는 건강한 식사 습관이야 말로, 나이 들어 가면서 병원균과 질병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시켜 주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사례로 주목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글:이종균기자 healthcare@imaeil.com

도움말:황진복원장(한영 한마음 연합소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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