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의보재정 대책 혼선

입력 2001-03-20 14:20:00

보험공단 직장노조 "임금 동결"=19일 오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장노동조합 배정근 위원장(가운데)이 직장의보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노조의 임금동결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위기 해법이 정치 논리에 휘말려 표류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19일 건강보험 재정과 의약분업 문제에 대한 종합대책을 마련하라고 이한동 국무총리에게 지시했지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사태 수습의 기미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특히 건강보험 통합과 의약분업을 재정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이들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일부 당국자까지 직간접적으로 동조하고 나서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 종합대책 발표 왜 연기됐나

최선정 보건복지부 장관은 당초 19일 오전 민주당과의 당정 협의를 거쳐 건강보험 재정안정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주말 이 계획을 갑자기 취소했다공식적으로 복지부가 밝힌 이유는 관련 부처나 당(민주당·자민련)과의 추가 협의를 통해 내용을 더 충실히 보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뿐 이면을 들여다 보면 당정간의 현실인식 차이가 진짜 이유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복지부가 이날 발표하려던 보험재정 안정대책의 골자는 △보험급여 심사 강화등 지출 억제를 통한 보험재정 절감 △보험료 15~20% 인상 △국고 1조원 이상 추가지원 등이 주요 내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여당쪽에서 흘러나온 얘기들을 보면 이같은 복지부 대책은 말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남궁석 정책위의장은 19일 기자들에게 재정지출 억제를 통해 2조5천억원 내지 3조원을 절감하고 나머지 부족분을 보험료 인상과 국고 추가지원으로 메우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여당에 부담이 큰 보험료 인상이나 국고 추가지원은 나중에 거론하고 우선 복지부가 보험급여 지출을 최대한 줄여보라는 것이다.

여당인 민주당으로서는 당연한 현실진단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복지부가 지출억제를 통해 절감할 수 있는 재정규모를 1조5천억원 전후로 잡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당의 기대치는 높아도 한참 높다고 봐야 한다. 무려 1조원 내지 1조5천억원의 편차가 엄존하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오늘 발표하려던 종합대책에는 현행법상 가능한 모든 정책수단이 포함돼 있다"면서 "이들 대책만 실행하려 해도 의료계와 약계의 엄청난 반발이 예상되며 따라서 사실상 1조원도 낙관불허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의 재정적자 계산법

보험료를 15% 인상하면 보험료 수입은 연간 1조2천374억원, 20% 인상하면 1조6천499억원 늘어난다. 올해 보험료 수입이 8조2천500억원 정도이기 때문이다.

인상 시기를 7월로 가정할 경우 올해에는 8~12월 5개월간만 인상된 보험료가 적용되므로 금년 중 재정에 투입될 수 있는 보험료 추가 수입은 15% 인상시 5천155억원, 20% 인상시 6천874억원이 고작이다.

따라서 보험료를 15~20% 인상한다 해도 올연말까지 예상되는 건강보험 재정의 순수 부족분(3조500억원) 가운데 2조3천600억원(20% 인상시) 내지 2조5천300억원(15% 인상시)은 재정절감 대책과 국고 추가지원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그 다음부터의 계산은 간단하다. 심사강화, 부당청구 차단, 보험료 징수율 제고, 약가 거품 제거 등 모든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복지부가 목표(1조5천억원)를 달성한다면 8천600억원 내지 1조원을 국고에서 추가 지원해야 하는 셈이다.

사실 복지부가 재정절감 종합대책을 통해 1조5천억원의 급여지출을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작년에 국민의 생명과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고 집단 휴·폐업을 벌였던 우리 의료계 수준과 주사제를 분업대상에 끌어넣기 위해 '의약분업 불복종 운동'을 생각해 냈던 약계가 그같은 정책의 주 대상인 점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매우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여당의 현실인식은 그렇지 않아도 '과연 될까'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복지부 대책을 더 강하게 만들어 의료계와 약계를 쥐어짜라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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