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민족 구성이 복잡한 나라다. 한반도에서 도래한 부류, 동남아와 남방에서 올라간 부류, 시베리아에서 내려온 부류들이 뒤섞여 있다. 그래서인지 건국신화도 복잡하다. 천상(天上) 남매의 근친혼을 시작으로 여동생 겸 아내가 죽자 오빠 겸 남편이 눈, 코에서 단성생식을 한다. 그 후손이 조수(潮水)의 신의 딸과 결혼하고 거기서 난 아들이 이모와 결혼하여 아이 넷을 낳는다. 일본의 초대 천황 신무(神武)가 그 넷째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우리에 비해 문화적으로 뒤떨어져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농경문화 시작점은 고조선시대다. 반면 일본은 기원전 3세기가 돼서야 농경문화가 본격화됐다. 한자와 문물제도도 우리나라로부터 배워갔다.
16세기 임진왜란 전까지 일본에서는 변변한 생활용기조차 없었다. 귀족, 평민 가릴 것없이 대나무 제품을 사용하는 게 고작이었다. 잡혀간 한국 도공들이 도예기술을 전수해줌으로써 일본의 생활문화는 한 차원 높여졌다.
문화 수출국인 우리나라가 역사에서 일본을 앞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원전 1세기, 한반도에 신라, 고구려, 백제가 들어섰을 때 일본에서는 나라라는 것이 없었다. 기원 후 3세기가 돼서야 초기 국가가 등장한다. 국가 성립이 300년 정도는 늦은 셈이다.
이때까지 역사가 없었다는 것이 일본인들에겐 뿌리깊은 열등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열등감은 일본 역사를 통하여 여러 형태로 왜곡됐다. 일본 최고의 역사서인 고서기(古書記)는 초대 신무(神武) 천황의 생존 시기를 기원전 660년에서 585년으로 적고 있다. 단군과 같은 신화라면 몰라도, 있지도 않은 역사에 천황을 만들어내고 그 생몰 연대까지 꿰어 맞춘 것을 보면 보통의 상상력이 아니다. 천황이란 호칭도 사실은 1천년뒤인 41대부터 사용된 것이다. 조선에 식민지를 두고 있었다는 임나일본부설 역시 이런 열등감의 발로다. 얼마 전에는 석기시대 역사까지 조작하는 해괴한 사건도 벌어졌다.
최근 한·중·일 3국의 외교현안이 되고 있는 일본의 중학교 공민교과서 검정 문제도 크게보면 일본인들의 역사적 열등감과 맞닿아 있다. 일본 정치인들은 80년대 이후 지금까지 백 수십 건의 망언들을 만들어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태평양전쟁으로 여러 나라가 독립했다", "한일합방은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 "종군위안부는 사실이 아니다" 등이다. 도무지 씨알이 먹혀들지 않는 소리를 여상스레 뱉어내고 있다. 역사적 패배의식이 그런 막무가내의 소리를 한다고 보기에는 이해가 안되는 점이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일본은 폐쇄적 해내(海內)민족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4면이 바다로 둘러쳐져 있었지만 의식은 해양으로 뻗지 못하고 뭍으로 향해 있었다. 철저한 계급사회 전통과 주어진 공간에서 주어진 일만 하도록 요구받는 구획적 사회체제가 자기 몰입성을 강화시켰다. 우리가 장인정신으로 칭송하는 누대의 가업계승도 이런 일본적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 결과, 일본은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근시형 국가로 성격 지워졌다. 이런 토양에서는 국수주의라는 편협성이 쉽게 자라난다. 그것이 역사적 열등감과 결부돼 망언을 연속케 하는 것 같다.
일본의 왕따 문화도 망언의 한 배경이 아닐까싶다. 일본에서는 조직이나 구획 내에서 철저한 자기 몫 지키기를 요구한다.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전체로부터 왕따 당하게 된다. 그 불명예를 피하려면 배를 가르거나 자살을 해야 한다. 왕따를 모면하기 위해 역사 왜곡을 요구하는 사회의 기대와 인식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속성들을 보면 일본은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사회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근친혼으로 채워진 건국신화의 유전학적 퇴보가 현실화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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