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해 교수가 새로 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입력 2001-03-19 14:02:00

◈(12)처녀총각의 사랑노래 댕기타령

"의원들 해외 여행에는 돈을 펑펑 써제키면서 목숨 걸고 불 끄는 소방대원들한테 위험수당 줄 돈이 없다카이 억장이 다 무너지네!" 홍제동 화재 참사 관련 뉴스를 지켜보던 어느 시민의 개탄이다. "어느 놈은 복도 많아서 뭉칫돈을 흘리고 다니며 찾지도 않는데, 어느 놈은 복이 지지리도 없어서 죽을 줄 알면서도 불 속에 뛰어들고, 세상 참 고르잖다!" 다음날 의원회관에서 수억 원대의 뭉칫돈이 발견되었다는 보도를 듣고 하는 소리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예산타령이자 돈타령이다. 모두 혼은 뜨고 돈 챙기는 일에만 이골이 나 있는 탓인지 돈은 항상 엉뚱한 곳에서 들끓는다. 하기야 댕기 접을 옷감을 뜨는 데도 돈이 들고 댕기를 접는 데도 돈이 든다.

한 냥 주고 떠온 댕기 / 두 냥 주고 접은 댕기

성 안에라 널뛰다가 / 성 밖에다 잊었구나

댕기 노래 시작 부분의 상투적 형식이다. 처녀들에게 댕기는 최상의 머리치레이다. 삼단같은 머리채를 세 갈래로 빗어 땋아내려 가다가 마지막 끝에 갑사나 공단으로 예쁘게 접은 댕기를 물려서 마무리를 한다. 총각들은 처녀들 등뒤로 늘어진 머리와 붉은 댕기를 보고 가슴이 설렌다. 노래에서 한 냥, 두 냥은 정확한 댕기값이라기보다 점층법으로 시적 형상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성안과 성밖의 경우도 '성'의 두운을 살리면서 안팎의 대립 구조를 통해 시적 역동성을 살린 것이다.

이렇게 돈을 들여서 애써 장만한 댕기를 두고 가족들의 인식이 저마다 다르다. "나로서는 사랑댕기"이지만, "우리 성님 눈치댕기/ 울오라배 호령댕기/ 우리 동생 샘낸 댕기"가 된다. 모처럼 새로 댕기를 했으나, 올케 언니 보기에는 눈치가 보이고, 오라버니에게는 무슨 머리 장식이냐 하고 나무라는 '호령 댕기'인가 하면, 동생에게는 언니의 새 댕기가 그저 샘이 날 뿐이다. 댕기에 대한 인식은 비슷하지만 노래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난다.

오라바이한테는 눈 흘긴 댕기 / 올끼한테는 설음 댕기

아부지한테는 몽디 댕기요 / 동생한테는 눈물댕기

댕기 탓에 오라버니는 눈을 흘기고 올케는 설움까지 준다. 동생은 댕기 탓에 눈물까지 흘리며 보챘던 모양이다. 댕기 하나에 온 가족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아버지가 몽둥이를 든 것을 보면 딸의 댕기치레가 요즘 노랑머리쯤으로 생각됐던 모양이다. 이런 설움과 시샘 가운데에도 처녀는 신바람이 나서 새 댕기를 머리채 끝에다 물리고 널뛰기를 한다.

서당 안에서 널뛰다가 / 서당 밖에서 잊었구나

꾼아꾼아 서당꾼아 / 줏은 댕기를 나를 주게

서당 안에서 널을 뛰다가 댕기가 풀려서 서당 밖으로 떨어진다. "담장 안에 뛰던 댕기/ 담장 밖에 빠진 댕기"라고 하여 서당이나 담장을 사이에 두고 안팎으로 맞서기도 한다. 이때 안팎은 공간적 대립이기도 하지만 남녀간의 성적 대립 곧 내외 관계를 대조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따라서 댕기는 규방이나 규중을 나타내는 여성들의 '안'과, 거리 또는 외부를 나타내는 남성들의 '밖'을 연결하는 매개 구실을 한다. 물론 이때 남녀는 처녀·총각이다. 그러므로 이 댕기는 으레 서당꾼이나 김도령 등 총각들의 손에 건너가게 된다. 이로써 남녀 사이에 댕기를 매개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뒷집에야 김도령님이 / 그 댕기를 주웃단다

돌려주소 돌려나주소 / 주은 댕기를 돌려주소

당신만 알고 나만 알고 / 가만 살짝이 돌려주소

허리 굽혀 주은 댕기 / 주은 댕기를 몬 주겄소

온 가족이 주목하며 시샘하고 눈치 주던 댕기를 잃어버린 것은 큰 사건이다. 개인적으로도 모처럼 장만한 댕기라 반드시 찾아야 하겠지만, 가족들이 야단칠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집에 가면 뭐라 칼꼬!" 걱정이 앞선다. 따라서 처녀는 댕기를 아무 일 없이 돌려 받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총각은 딴전을 피우며 수작을 건다. 처음에는 '허리를 굽혀서 주은 댕기 그냥은 못 주겠다'고 하다가, 처녀가 간절하게 돌려달라고 보채면 보챌수록 총각의 요구도 점점 대담해진다. "백년해로 언약을 맺어야" 댕기를 주겠단다. 그러다가 혼례를 올리는 대목까지 노골적으로 발전한다.

하늘 밑에 챙알 치고 / 챙알 밑에다 팽풍 치고

제상 한번 채레 놓고 / 암탉장닭 마주 놓고

백년 솔가지 꽂아두고 / 행례할 때 너를 주지

차일을 치고 병풍을 두르고 혼례를 올리는 상황이 여실하다. 혼례상 위에 암탉과 장닭을 마주 놓고 솔가지를 꽂아둔 모습이 그림처럼 분명하다. 차일은 해를 가리고 병풍은 혼례장을 아름답게 꾸며준다. 암수 닭은 부부의 금슬을 뜻하고 솔가지와 대나무는 변하지 않은 절개를 상징한다.

청실홍실 늘여 놓고 / 알밤대추는 밍태가 물고

대초 두 자로 불 키어 / 양 머리다가 세워 놓고

쪽도리라컨 자네가 씨고 / 사모관대는 내가 씨고

북향사배 찾으신 후에 / 그 댕기를 돌려주제

혼례상황이 한층 더 구체적으로 노래된다. 댕기는 처녀 때 머리 땋은 끝에다 물려야 제격인데, 이미 혼례를 치르느라 머리를 올리고 쪽을 지어 비녀를 꽂은 신부의 머리에는 소용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총각의 요구는 계속된다.

긴 베개 마주 베고 / 잠잘 적에는 너를 주마

아들 놔서 곱게 길러 / 살림살 적에 너를 주마

초가삼칸 집을 짓고 / 알뜰이 살 적에 너를 주마

첫날밤을 치르고 아들을 낳아서 기르며 살림살이를 같이 할 적에 돌려주겠다고 한다. 엉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침내 처녀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저항하며 반격한다.

장닭 같이 쫏을 놈아 / 돌가지 같이 찢을 놈아

내 주머니 돈 있으면 / 그 댕기 아니라도 또 있단다

반격이 예사롭지 않다. 뼛속까지 원한이 사무친 듯하다. 장닭처럼 부리로 쪼아야 속이 시원할 놈으로, 도라지처럼 가닥가닥 찢어야 마땅할 놈으로 간주하여 악을 쓴다. 아무리 속 좋은 처녀라 하더라도 댕기 하나를 미끼로 이렇게까지 물고늘어지면 악이 받칠 만하다. 반격이 시원스럽다.

우리 정부는 속도 좋다. 자민련이 공조를 근거로 온갖 몽니를 부리며 장관자리 뒷거래를 해도 그만이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두고 거친 말을 해도 한미 정상회담에 의견차 없다며 얼버무리는 데 급급하다. 현대 계열사에 공적 자금 투입도 마찬가지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마지막 지원'을 끊임없이 되뇌이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자금 지원을 거듭하고 있다. 불과 보름 전에 천명한 '상시적 퇴출시스템' 원칙을 스스로 부정하며 다시 현대 지원에 공적 자금을 퍼주기로 한 것이다.

모름지기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임무이다. 그 임무를 일선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감당하고 있는 공직자가 119 소방대원이다. 이들의 박봉과 대우에 대해서는 예산타령을 하면서, 엉뚱하게 재벌기업 살리는 데에는 목돈을 계속 쏟아 붓고 있다. 돈을 펑펑 쓰는 재벌을 살리는 데는 국민의 혈세를 계속 쏟아 부으면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다 죽어 넘어지는 박봉의 소방관들 복지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성금에 의존하려 들고 있다. 이렇게 어긋진 정부의 발상을 보노라면, 과연 이 정부에 제대로 된 정책이 있는지 의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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