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갓진 시골에 있는 내 작업실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때로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그들 중엔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것을 일깨워주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 즐거움을 안겨준다.
몇해전 꽃샘바람이 아직 차갑던 어느 봄날, 작업에 열중해 있는데 바깥에서 인기척이 났다. 정갈한 승복차림의 두 스님이 합장하며 서있었다. 모 사찰 총무스님과 보좌하는 스님이라고 했다. 안으로 들어와 차 한잔 나누기를 권했다. 차를 머금으며 이런저런 세상얘기를 나누는 중에 총무스님이 "처사님은 전생에 절밥을 많이 드신 분 같습니다"고 했다. 다른 종교를 갖고 있다고 답했더니 "사실 이런 것 조차 껍질이지요. 저도 그 껍질에 갇혀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 내심 기뻤다. 몇 시간이나 대화가 이어졌다. 스님이 불쑥 이런 주문을 했다. "명상은 하시는 것 같고, '선(禪)'을 한 번 해보시지요" 그 말에 내가 "평소 선을 하고 있습니다"고 답했더니 의아해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말없이 두 손으로 내가 그리고 있던 그림을 가리켰다. 그러자 스님은 "아하! 죄송합니다"하고는 합장을 했다.
내가 가리킨 내 그림. 그것은 나와의 대화이자 생에 대한 근원적 질문 등 마음 공부를 하기 위한 내 나름의 창구인 것이다. 스님은 선이라는 수행방법을 통해, 나는 그림을 통해, 서로 모양은 다르지만 이루고자 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
누구랄 것 없이 우리는 자기 욕심에 스스로 가리워져 상대방을 인정하거나 존중하지 않고 자기잣대로만 가늠하려는 측면이 많다. 누구나 다 알면서도 실천하기 힘든 것의 하나가 바로 상대방의 삶을 존중할 때 비로소 상대방도 나를 존중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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