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무르익는 시골장터 푸근한 인심 만나러 가볼까

입력 2001-03-16 14:29:00

'고추맵다 영양장 일월산 더덕으로 나가고''풍기인삼 영주장 한우고기 천세나네''참기름 미끌 예천장 청포장수 웃고가네''양반많다 풍산장 에누리 없어 좋고''꿀사과 청송장 공장 없어 살기 좋고''풍각장은 벌판장 엉덩이 시려 못 보고''마늘맵다 의성장 사곡감으로 나가고''토종대추 봉화장 억지춘향으로 나가고''오다가다 만난 장 인사 바빠 못본다'.

이처럼 장 타령을 부르는 신명떨음이 장꾼들을 흥겹게 만들고 이것저것 먹을 것, 볼 것도 많았던 시골의 5일장.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닷새마다 열리는 시골장과 관련된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큰 맘 먹고 사 주신 '마루치 아라치' 그림이 그려진 운동화 한 켤레를 신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던 것도 그 시절 얘기다.

예로부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기능을 해온 시골의 장. 교통발달과 도시개발, 종합상가 건축, 상설 할인점 개설 등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지만 봄의 기운이 짙어지면서 나름의 기능을 점차 되찾고 있다. 요즘의 재래시장에는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마음들이 모이고, 갖가지 매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등 삶의 활력이 돌고있다.

경북과 대구서 가까운 경남의 군지역 장터에 가면 아직도 옛날 장터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바다에서 나는 것, 땅에서 나는 것, 산에서 나는 것, 공장에서 나는 것 등 없는 것이 없다. 장날이면 주민들이 자가용이나 버스에 매물을 싣고 몰려든다. 애써 채취한 산나물이나 겨우내 잘 보관해 뒀던 농산물을 판 돈으로 장을 한바퀴 돌며, 생활용품을 사 가지고 넉넉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표정은 순박함 그 자체다.

봄기운이 짙어진 요즘 시골장에선 뭐니뭐니해도 도라지.더덕.돌나물.미나리 등 산과 들에서 채취한 각종 나물과 약초들이 가장 인기다. 얼마가지 않아선 두릅, 참나물 등 심산유곡에서 뜯은 나물들이 본격 출하된다. 또 여름철에는 머루.다래.보리수열매.포도 등이 선보이며, 김장철엔 무 배추와 양념, 과실류가 풍요롭다. 이와함께 사철 장터에는 농기구, 옷, 양말, 침구류, 생선, 어묵, 채소, 과일이 가득하고 '부도난 회사의 제품'이라고 떠들어대는 좌판상도 진을 친다.

대구서 멀리 떨어진 흥해장(포항시 흥해읍)이나 죽변장(울진군 죽변면), 영덕장(영덕군 영덕읍), 감포장(경주시 감포읍) 등 어촌의 장터에 가면 싱싱한 해산물이 풍요롭다. 요즘에는 대게철이라 장터가 크게 붐빈다.

대구에서 구마고속도로와 88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가량 달려간 경남 거창군 가조면 가조장(4,9일)에서는 봄의 기운을 한 껏 맡을 수 있었다. 올 농사에 쓰일 괭이.삽.쇠스랑.호미 등 각종 농기구가 여기저기에 널려있고, 돌나물.미나리.홋잎.우엉.반디나물.시금치 등 밥상을 봄으로 장식할만한 나물들이 군데군데 놓여있었다. 소소리바람에 몸을 웅크리고앉아 봄나물을 파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정겹기만 했다. 장꾼들은 "거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장은 역시 거창장(6,11)"이라고 귀띔한다.

아직도 닷새마다 한번씩 열리고 있는 시골장에는 무엇이든지 다 있다. 이미 세상에 사라졌을 듯한 물건들도, 예전에는 보도 듣도 못했던 것들도. 장터마다에 있는 돼지국밥집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 친지들과 그동안의 세상사를 얘기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장터에는 서민들의 소박한 삶이 보인다. 농산물을 조금씩 가져나온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주머니가 난전을 차지하고 앉아 얘기를 나누는 모습은 사뭇 정겹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황재성 기자 jsgold@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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