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은 백제 하남위례성

입력 2001-03-12 14:07:00

백제의 건국은 언제인가. 실질적인 건국은 3세기 중후반 고이왕이나 4세기 중후반 근초고왕때 쯤이라는 것이 현재 한국 사학계의 통설. 이같은 통설은 백제가 기원전 18년에 건국됐고 이미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로 성장했다는 '삼국사기'기록을 부정한 결과다.

연합통신 김태식 기자가 쓴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김영사간)는 이런 주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이같은 통설은 한국고대사를 깎아내리는데 혈안이 됐던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물이라고 통박하고 있다.

저자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증명할만한 뚜렷한 근거로 최근 발굴된 '풍납토성'을 들고 있다.

지난 1997년 이후 계속된 발굴 결과 풍납토성은 성벽만해도 폭 40m, 높이 최저 9m, 최고 15m, 둘레 3.5km 에 이르는 거대한 판축 평지토성임이 밝혀졌다. 또 전체 넓이 22만6천평이나 되는 성벽 안쪽 재건축 아파트 예정지 몇 곳을 발굴한 결과 일반주거지로는 볼 수 없는 특수건물지가 대량으로 확인됐다. 더구나 출토 유물과 이에 대한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 풍납토성은 빠르면 기원 전후 늦어도 서기 200년쯤에는 축조가 끝난 것으로 밝혀졌다.

저자는 이처럼 거대한 토성을 쌓기 위해서는 여기에 걸맞는 강력한 정치집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정치체는 당시 백제 말고는 없고 더욱이 이 백제는 고이왕 혹은 근초고왕 이전의 백제라는 것.

나아가 삼국사기를 비롯한 문헌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종합해 볼 때 풍납토성이야말로 김부식조차 어디인지 모르겠다고 했던 백제 왕성인 '하남 위례성'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이는 삼국사기의 백제 시조 온조왕 대목에 하남위례성을 '북쪽으로는 한수(한강)를 띠처럼 두르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을 의지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비옥한 벌판을 바라보고 서쪽으로 큰 바다를 둘렀다'는 기록에 근거한 것.

이외에 저자는 풍납토성이 백제 왕성이라는 여러가지 근거를 들고 있다. 첫번째는 그 규모. 풍납토성은 삼국시대 성으로는 단연 최대다. 가장 강력한 백제 왕성 후보였던 몽촌 토성이나 신라 천년 왕성인 원성보다도 두배이상 크다. 둘째로는 대규모 특수건물터와 기와, 전돌, 주초에 주목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실평수 25평이나 되는 대형 건물터만 10여기가 발굴됐고 한 변의 길이가 15m가 넘는 초대형 건물터까지 확인됐다. 수백점 이상이 확인되는 각종 기와와 전돌 및 초석도 왕궁같은 최고급 건물에나 쓰일 수 있는 건축자재라는 것.

이 책은 한편으로 풍납토성에 대한 생생한 발굴 기록을 담고 있다. 저자는 1925년 대홍수 이래 풍납토성의 중요성이 대두됐음에도 이병도와 김원룡이 이곳을 왕성이 아니다고 지목, 배척된 역사를 되돌아보고 1997년 첫 발굴이후의 기록을 중계방송 하듯이 생생히 전하고 있다.

정창룡기자 jc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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