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건설 법정관리 폐지배경

입력 2001-03-10 15:09:00

9일 서울지법 파산부의 동아건설에 대한 정리절차 폐지 결정은 법원이 회사의 법정관리 유지여부를 철저히 '법과 회사의 경제성'에 근거해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동아건설과 정부, 채권단까지 나서 리비아 대수로 공사 등을 명분으로 '법정관리 지속'을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결국 '법대로'라는 원칙을 따랐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99년 회사정리법이 개정된 이후 회사의 청산가치가 높게 조사된 경우 법원 판단에는 재량이 있을 수 없게 됐다"며 "향후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리절차 폐지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99년 이전 구 회사정리법은 경제성 외에 '공익성'도 법정관리 요건으로 삼았으나 IMF 사태 후 정부가 "구조조정 촉진과 신속한 퇴출"이라는 명분아래 법을 개정, 청산가치가 큰 기업에는 법원이 '필요적'으로 폐지결정을 내리도록 돼있다.

채권단은 삼일회계법인의 재실사 이후에도 동아건설의 청산가치가 높은 것으로 결론나자 건축, 공장부문은 정리하고 계속기업가치가 높은 해외, 토목, 플랜트부문은 유지하는 '조건부, 선별적 법정관리'를, 동아는 '우량기업(클린 컴퍼니)'과 '불량기업(배드 컴퍼니)'로 분할하는 안을 내놨다.

그러나 이 역시 청산가치가 높게 나온 상태에서는 법적으로 선택 불가능한 안이었다.

재판부는 법정관리를 폐지하지 않고 외형상 기업을 유지하면서도 사실상 청산하는 '청산형 정리계획안'도 유력하게 검토했으나 이는 채권자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고 외부의 신청이 있어야 하는데 신청자가 없어 고려대상에서 빠졌다.

결국 기존 회사정리법이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커야 한다"는 '경제성'기준만을 법정관리 존속 및 퇴출의 유일한 잣대로 삼고 있는 점이 재판부의 판단 재량을 좁혀놓았다.

그러나 법원은 동아건설의 퇴출을 결론낸 뒤에도 국내 주택분양권자와 리비아측의 '공사 계속 보장서' 요구와 정리채권 신고 등 강도높은 압력에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9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동아건설이 청산돼도 리비아 공사와 용인솔레시티 아파트 신축공사 등을 지속할 수 있다"고 누누이 강조한 것도 이런 고충에서 나온 것이다.

재판부가 파산과정에서 채권자의 동의아래 리비아 대수로 공사와 아파트 신축공사 등을 계속할 수 있다거나 새로운 법인을 만들어 국내외 공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도 이런 맥락으로 분석된다.

재판부는 특히 "파산절차에서도 경쟁력 있는 사업부문은 영업양도 등의 방법으로 M&A(인수합병)를 시도할 수도 있다"고 밝혀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리비아대수로 공사 및 국내 건설사업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

재판부 관계자는 이번 결정과 관련, "눈에 보이는 경제적 효과만 보지 말고 부실기업 조기 퇴출에 따른 경제적 이득이 더 크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건설업계 분위기

도급순위 7위의 동아건설에 대해 법원이 회사정리절차 폐지를 결정, 사실상 파산시키기로 하자 관련업계는 연이은 건설업계의 '악재'에 크게 우려하면서도 대형건설업체의 몰락에 대해 아쉬움이 교차하는 분위기다.

A사 관계자는 "동아의 경우 파산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봤는데 다소 의외"라며 "100대 건설사 가운데 40여개 업체가 워크아웃이나 화의, 부도 처리된 열악한 업계 상황을 생각할 때 이번 결정이 결코 남의 집 일로만 여겨지진 않는다"고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건설업계에 악재가 발생할 때마다 주택시장의 분양경기가 출렁거려왔다"며 "한국부동산신탁, 고려산업개발 등의 부도에 이어 봄철을 맞아 겨우 살아나려는 분양심리에 또한번 찬물을 끼얹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한숨지었다.B사 관계자는 "기술력 있는 동아건설이 파산결정을 받은 것에 대해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일단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며 그러나 "지난 2년간 동아건설이 워크아웃과정에서 보여준 혼선을 생각할 때 동아건설도 구조조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관련업계는 이날 동아건설에 대한 법원의 파산결정이 해외수주 활동에 큰걸림돌로 작용하진 않겠지만 신용확보 차원에서 리비아 대수로 공사의 확실한 매듭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C사 관계자는 "동아건설을 포함한 국내 건설업체들의 신용도 하락은 해외수주활동에 이미 반영된 상태여서 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앞으로 발주처 측이 좀더 까다롭게 나올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해외건설협회 소재오 전무는 "현재 전체공정의 5%만 남아 1년 반 정도면 완공할수 있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그동안 정부에서 밝혀왔던대로 확실한 정리가 필요하다"며 "파산법인 형태로 공사를 계속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이 공사의 완수는 대외신인도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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