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외국인사회(1)

입력 2001-03-09 15:50:00

"낯익은 고국 음식과 노래도 있고 한 잔할 수 있는 전용클럽까지 생겨 더 이상 외롭지 않아요"

인도네시아인 마노(Mano·29)씨는 일요일인 지난 4일 달서구 '좋은식당'(Warung Bali Indah)에서 '마시 고렝'이란 볶음밥을 먹고 시내에 나가 '카페 인도네시아'에서 차를 한잔 마신 뒤 저녁에는 수성구에 있는 한 외국인전용클럽으로 향했다. 클럽에 들어선 마노씨는 고향 친구들을 만나 일주일간 알루미늄 공장일로 쌓인 피로를 풀며 고향의 노래와 술을 맘껏 즐겼다.

중국 당나라시대 한·중관계를 전공하는 중국인 배근흥(35)씨는 2년전 대구에 유학와 경북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올해 박사과정을 수료한다. 배씨는 고향의 아내를 데려와 대구에 장기간 체류할 것을 고려할만큼 한국생활에 매력을 갖고 있다.대구에도 외국인들이 몰려들면서 외국인 전용 식당, 카페, 가게가 등장하고, 외국인들만의 '스포츠동아리' '계모임' '공동 물품시장'이 생겨나는 등 일부지역을 중심으로 '외국인 사회'가 자리잡고 있다. 이와 함께 외국인을 위한 문화센터, 노동상담소 등 각종 시설·기관까지 활동하고 있다.

지난 91년 1천113명(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등록수)이던 대구지역 외국인은 올해 2월 현재 1만3천959명으로 10년만에 10배가량 늘었다. 이는 외국인 등록절차를 거쳐 90일 이상 장기체류하는 경우에 한한 것이며, 불법체류자 2만여명과 함께 밀입국, 단기체류, 주한미군까지 포함하면 현재 대구 거주 외국인은 줄잡아 4만명에 육박할 것이란 당국의 추산이다.

이로 인해 외국인들의 국적도 10년전에는 미국, 일본, 중국 등으로 단조로웠으나 최근에는 영국, 프랑스, 뉴질랜드, 이탈리아, 헝가리, 남아공 등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 50여개를 넘나들고 있다.

이런 풍속도를 반영, 종전에는 캠프헨리, 캠프워커 등 미군부대 주변에만 형성됐던 외국인전용클럽이 수성구, 중구, 달서구 등 3, 4곳에 새로 생겨났다. 또 파키스탄(달서구 용산동), 인도네시아(달서구 두류3동) 등 외국 음식점과 외국인 전용상점도 3년전부터 10여개나 들어섰다.

대구에 외국인이 늘면서 각 국가별 '스포츠동아리' 활동도 활발해져, 지난달 인도네시아 근로자 50여명이 '축구동아리'를 결성했고 필리핀 근로자 100여명은 5년전부터 매주 한차례 '농구대회'를 열며 이국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이처럼 크게 늘어난 외국인들은 순조롭게 대구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범죄에 빠지거나 불법체류·임금체불 등으로 무너지는 사례도 적지않다.

대구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인 폴란드 출신 마데이(Maday·68)씨는 "지난 95년 계대 음대 교환교수로 대구에 온 것이 인연이 돼 99년부터 지휘자를 맡아 대구생활에 제대로 정착했다"면서 "하지만 이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빈털터리로 떠나는 외국인들도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경태(43)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장은 "대구가 이제 국제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인들을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필리핀 출신 전 에덴씨

"피부는 남편을 닮고, 이목구비는 절 닮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대구에 정착한 지 이태를 맞고 있는 필리핀 출신 전 에덴(29·달서구 신당동)씨. 만삭의 몸이지만 퇴근한 남편을 위해 설거지를 하는 손놀림이 제법 익숙하다.

에덴씨가 남편 전상국(38·선반기계공)씨와 맺어진 사연은 한편의 드라마 같다. 성서공단의 자동차 부속공장에서 근무하던 전씨는 지난 99년, 교회에서 친분을 맺고 어려움을 도와주던 필리핀 직장동료들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귀국한 그들에게서 고향처녀를 소개시켜주겠다는 편지가 온 것. 전씨는 서투른 러브레터와 자신의 사진을 동봉해 지금의 아내에게 보냈다. "나는 고아로 태어난 데다 다리도 불편하고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애틋한 말과 함께.

전씨의 솔직함에 호감이 간 에덴씨는 여러차례의 전화통화끝에 지난해 1월 자신을 찾아 필리핀으로 온 전씨의 청혼을 받아들여 지난 해 11월 한국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실물이 사진보다 못해서 실망했다"며 슬쩍 떠보는 아내에게 전씨는 "처음 봤을 때 키가 너무 작고 어리게 보여 중학생인줄 알았고 형제가 3남 5녀나 돼 놀랐다"며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에덴씨는 "필리핀에서는 한국에 대한 선망과 함께 부정적인 이야기도 많았는데 지금의 남편을 만나 좋은 이미지로 바뀌게 됐다"며 "필리핀 근로자들을 선진국에서 온 다른 외국인들과 차별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으면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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