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정경유착 의혹

입력 2001-03-07 15:16:00

미국의 재벌 '칼라일 그룹'이 부시 집권으로 '정경 유착' 의혹을 받기 시작했다.한국과도 많은 연관을 가진 이 기업에서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고문, 지난번 대선 때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은 동업자 겸 전무를 맡고 있으며, 공화당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냈던 프랭크 갈루치는 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외국에서도 메이저 전 영국 총리,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등이 관여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박태준 전 총리가 고문으로 위촉돼 있다.5일자 보도에서 그러한 내막을 파 헤친 뉴욕 타임스 신문에 따르면, 더욱이 이 그룹은 정부와 연계해 사업을 하거나 정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분야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 칼라일의 성공에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34%의 높은 수익률을 보인 정확한 투자도 원동력이 됐으나, 그런 성공도 정부 영향을 받는 기업에 투자를 하는 것으로 가능했다. 칼라일 투자의 3분의 2가 정부의 지출이나 정책 변화에 영향을 받는 국방·통신 분야 기업에 집중돼 있다.

정경 유착 의혹을 받을 만한 일들도 실제 발생했다. 칼라일이 투자한 방산업체들의 수십억 달러 짜리 프로젝트가 검토되던 지난 2월, 갈루치 회장은 럼즈펠드 현 국방장관 및 체니 부통령을 만나 국방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칼라일의 성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갈루치 회장은 럼즈펠드 현 국방장관과 대학 동창이고, 체니 부통령과도 연결돼 있다.

특히 칼라일 그룹의 분야는 사금융이어서, 전직 행정부 관리의 로비금지 규정도 미치지 않는다. 동시에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점도 특징. 그 덕인지, 1987년 무명의 펀드로 출발해 지금은 164개 기업의 대주주이자 굴지의 군수업체로 성장했다. 정보통신 업계에서도 주도 세력으로 등장해 있다.

이와 관련, 그룹측은 "부시·베이커·갈루치 등이 행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문제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비영리단체 '공직자 청렴 센터'(워싱턴) 소장은 "전직 대통령이 앞으로 정부와 관련 있는 사업에 개인적 투자를 해 돈을 벌면 부시 현 대통령도 언젠가는 이득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칼라일 그룹은 한국에도 투자, 작년 9월 부시 전 대통령이 서울을 방문해 총리 등 정부·재계 관계자와 만난 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미은행 지분 40.7%를 인수해 최대 주주의 자리에 올랐다.

한편 6일자 월 스트리트 저널 신문은 작년 대선에서 부시를 밀었던 기업들이 서서히 그 반대 급부를 받아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업 중 가장 많은 130만 달러나 정치 자금으로 기부했던 신용카드 발급회사 MBNA 아메리카 은행 경우, 지난 주에 이미 그 대가를 톡톡히 봤다. 파산한 소비자들의 신용카드 대금 면제범위 축소를 위한 로비를 벌여 부시로부터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신용카드 회사들은 합계 수천만 달러(연간)의 추가 이익을 올릴 수 있게 된 것.

노동자 산업재해 규제안 폐기도 부시를 밀었던 기업들의 소원대로 됐다. 클린턴이 서명했던 이 규제 제도도 부시는 시행 보류할 계획이다. 그외 자신을 밀었던 제약사·담배사·방위산업체·항공사 등에 대한 각종 규제도 부시 행정부는 철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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