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移民 강요받는 사회

입력 2001-03-05 14:25:00

'국경 없는 시대' '세계화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즈음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떠나려 하는 사람들은 더욱 많은 모양이다. 차범근과 박찬호가 나갔기에 히딩크와 우즈가 왔는지 모른다. 이 같이 나라 안팎의 교류가 많아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며, 그 때문에 지금은 '지구촌'이라는 말도 더욱 실감날 정도다. 이렇게 본다면 이민도 현대적 삶의 추이를 반영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의 이민 현상에는 뭔가 불길한 조짐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민이 이 땅을 탈출하려는 일종의 엑소더스라면 '지구촌'이나 '세계화'라는 말이 무색해질 수밖에 없고, 바라볼 문제만은 아님에 틀림없다. 새로운 삶을 찾아 해외로 떠나는 것은 개인의 자유선택 사항이라 하더라도 오늘처럼 '이민을 강요받는 사회'에 이르게 된 맥락만은 반드시 직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나 광복 후의 이민은 주로 '먹고 살기' 위한 생존 전략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른 것 같다.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한 회의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데서 엑소더스의 욕망이 발원하고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아이 잡는' 치열한 교육 경쟁과 '허리가 휠 정도'의 과외비가 학생과 학부모를 나라 밖으로 내밀고 있는 점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지난 3, 4일 이틀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이민·유학 박람회에는 무려 4만5천여명이나 몰려 우리 사회의 이민 열기 폭증세를 말해 줬다. 이들 중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이민을 택하려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일관성 없는 교육 정책, 살인적인 입시 경쟁,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사교육비, 학교 폭력 등 우리의 교육 현실에 질려 고국을 등지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민 현상은 '우리 사회'라는 거푸집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거기서 더 이상 못 견디고 별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을 때 결과야 어떻든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땅에서 새 출발을 기대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잠재적인 이민 구상자들이라면, 병든 이 사회의 근원적인 치유책을 찾고, 여기에서의 삶을 자랑스럽게 느끼도록 하는 대전환의 계기를 장만해야만 하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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