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세월속에 혈육의 정이 그리워, 기나긴 50년 세월속에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꿈만 같아 남모르게 눈물이 나는구나…'
3일 새벽 이용수(68.서구 평리4동)씨는 밤새워 서투르게 쓴 편지를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며칠전 동생 기수(57)씨와 여동생 명숙(53)씨가 북한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들에게 보낼 편지를 쓰는 동안 이씨는 몇번이나 눈물이 왈칵 솟았다.
부모님께 곧 돌아오마고 절을 올리고 대구로 내려온 1952년 12월 10일, 그날의 일이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황해도 서흥군 도면이 고향인 이씨는 당시 17살, 고향 오덕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었으며 '대한청년단'이라는 반공단체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었다.
그즈음 중공군이 수원까지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은 이씨는 미군이 뿌린 삐라(전단)에 적힌 '10일만 남쪽으로 피난해 있으면 고향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내용을 보고 잠시 몸을 피하기로 결심했다고.
그러나 부모님께 드린 '10일간의 약속'은 평생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되었고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라는 생각이 이씨의 가슴을 짓누르는 한이 되었다.북한에서 적십자사를 통해 보내온 소식은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뜨시고 둘째 남동생 이명수씨가 행방불명 상태라는 것. 그리고 황해북도 송림시에 기수씨와 명숙씨가 살아있다는 것이 전부.
이씨는 "우선 동생들에게 부모님의 기일을 꼭 써 보내달라고 편지에 썼고 같이 제사를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슬하에 2남1녀를 둔 이씨는 며칠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일로 침울해있다. 이씨는 "북한의 동생들에게 아내와 같이 찍은 가족사진을 보내주고 싶었는데…"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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