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대륙을 달린다(8)

입력 2001-02-21 14:08:00

◈노보시비르스크(상)

예카테린부르크~노보시비르스크 구간 열차의 쿠페칸(4인실) 아래 쪽 침대 둘은 노부부가 이미 차지했다. 노부부는 블라디보스토크 철도국에서 40년을 함께 근무한 전직 철도원들이었다.

철도 가족에 한해 여객 요금이 무료라서 공짜 여행 중이었다. 할머니는 남편의 바람기를 힐책하면서도 엎드리라더니 맨 살의 어깨를 열심히 주물러 댔다.

차창 밖으로 아련하게 불빛 무리가 반짝였다. 도시(都市). 설원과 어둠의 한 켠에서 속수무책으로 짓눌려 있던 감성이 새삼 살아나 들떴다. '도시는 지긋지긋한 괴물이면서도,한편으로는 얼마나 정겨운 것인가'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두 도시간 1천522㎞를 22시간 동안 달린 열차는,여름에 수량이 늘어나면 세계 4대강 수준으로까지 커진다는 오브강을 넘어, 천천히 노보시비르스크역으로 들어섰다. 모스크바를 기점으로 잡는다면 3천336㎞를 달렸다.

노보시비르스크(이하 노보). 새(노보) '시베리아(시비르스크)'라는 뜻을 지닌 신흥도시이다. 시베리아의 지리적 중심지이자 철도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는 도시라고 해서 흔히 시베리아의 수도로 불린다. 1893년의 오브강 철교 공사를 계기로 형성되기 시작했으므로 이제 갓 100세를 넘겼고,인구는 100만을 조금 넘는다. 도시의 분위기는 유럽풍으로 단정하고 깔끔하다. 외국인 전용 호텔인 인투리스트호텔에 여장을 풀고 서시베리아 철도청을 찾아갔다.

러시아 철도부(MPS)가 러시아 전역의 철도를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부서라면,서시베리아 철도청은 MPS의 대표적인 하위 기구로서 서시베리아 지역의 철도를 현장에서 관장하는 곳이다. 스타라스텐코 V.I 청장은 무인(武人) 형이고,성격도 매우 시원시원했다. 청장은 "노보는 시베리아의 지리적 중심지라서 거의 모든 화물이 이곳을 통해 일대 지방으로 분배된다. 북쪽의 화물도 이곳을 통해 중앙으로 내려간다. 정확한 통계를 내기는 어렵지만,

그런 까닭에 자동차를 비롯한 제반 산업 생산물들이 거의 다 이곳으로 집중된다. MPS 산하에는 17개의 지역 철도청이 있는데,화물과 여객 운송 규모면에서 노보가 단연 1위라서 노보 청장이 서열상으로도 1위다"라고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 "세계 철도의 샘플로서 철도와 관련된 새 기술이 개발되면 가장 먼저 적용해 보는 게 TSR "이라면서 "남북한 종단철도(TKR)와 TSR가 연결되면 러시아는 통과화물의 50% 정도를 처리함으로써 운임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남북한은 유럽까지 보내는 화물의 운송일자와 운임을 절약할 수 있으므로 이 작업이 한시바삐 마무리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철도상의 통신 문제를 비롯해 부분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고 시인하면서 "지난 10년간 괄목할 만한 변화가 진행된 만큼 나머지 문제도 신속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청장은 남북한의 통일문제에 대해 먼저 관심을 보이면서 "한민족이 갈라져 적대시하는 상황은 어떤 이유로든 바람직하지 않다.

경의선 복원을 계기로 남북한이 통일을 이룬다면 무척 기쁘겠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철도청에서 나와 노보 주 정부를 찾아갔다. 티텐코 N.A 부지사는 정중하면서도 소탈한 스타일이었다. 그는 "러시아의 경제계획 프로그램은 노보와 블라디보스토크 구간의 철도를 염두에 두고 수립,집행되며,생산 및 유통의 양도 정부의 철도 운용 계획에 따라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면서 "이 구간의 과제는 러시아 전체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남북한과 중국 일본 동남아국가들의 과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모두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얼마전까지 TSR 전체 구간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인한 중복화물 문제가 현안이었는데 이 문제는 MPS가 이미 3년 전에 해결했고,나머지 현안은 운임이 동일하지 않아 하주들이 손해를 본다는 것인데, 이 문제 역시 푸틴 대통령이 운임 일원화 방침을 갖고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강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러면서 "외국에서 가장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은 푸틴이 각 철도청에 개별 관리 책임을 묻겠다고 천명하는 등 정부가 이 모든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날 철도청장은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여 사진촬영용 승합차와 인력을 지원해 주었다. 차는 현대 스타렉스였다. 남녀 직원 2명의 안내를 받아 화물 컨테이너 집하장으로 갔다. 무릎까지 쌓인 눈밭을 헤매다니기도 하고 귀를 끊어버릴 듯한 바람이 불어대는 고공 크레인 위로 올라서기도 하면서 열심히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데,장대한 화물열차 하나가 다가왔다.

직원은 컨테이너 140량을 이어붙인 1.8㎞짜리라고 말해주었다. 화물열차는 1분 가량이 지나서야 완전히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갔다. 컨테이너 행렬 속에서 HYUNDAI(현대) 'CHO YANG(조양)'이란 글자가 새겨진 것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글 : 이광우기자

사진 : 강원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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