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으로 가자(13)-하구뿐인 지역개발정책

입력 2001-02-19 14:09:00

정치권에서 '지방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개발 만능 시대. 서울 인구가 500만을 넘어서고 이에 따른 필연적 부작용으로 수도권 집중화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던 시절이다. 당시 3선을 노린 박정희 후보와 40대 기수론을 주창한 김대중 후보는 각각 '지역개발론'을 들고 나왔다. '중앙 행정 사무와 세금의 대폭적인 지방이양, 행정기구의 과감한 지방분산, 지역경제 활성화'. 당시 두 진영이 내세운 지방화 공약의 골격이다. 다시 시제를 바꿔 2001년으로 돌아와 보자. 지난달 19일 이한동 총리는 올해 추진할 주요 국정 과제를 발표했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지방 발전을 위한 지역균형발전 특별법을 제정하고…". 30년전의 빛바랜 공약이나 오늘의 국정 과제나 내용상에서 별반 다른 점이 없다. 그동안의 '지방화 정책'이 얼마나 철저하게 내팽개쳐지고 실패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차이는 서울공화국의 화려한 발전과 지방의 비참한 몰락의 정도가 더욱 심각해지고 구조화했다는 정도다.

우리나라 국토 계획의 뿌리는 3공 시절 마련된 '국토건설종합계획법'이다. 63년 시행 이후 정권 교체 때 마다 조금씩 변질됐지만 아직도 국토 개발에 관한 유일한 법정 계획이다. 따라서 국토의 미래와 함께 '지역 개발'의 청사진을 설정해 볼 수 있는 잣대가 된다.

경제 개발의 토대를 마련한 제 1차 계획을 빼면 '지역 개발'은 국토 계획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다. 2차 국토개발계획(1982~1991년)에서는 '수도권 억제'를, 3차 계획(1992~2001년)은 '지방 분산형 개발'을 주요 기조로 삼고 있다.

사실 정부의 수도권 억제책은 안보상 취약한 강북 개발을 막기 위해 '대도시 인구 방지책'이란 이름으로 60년대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70년대 들어 경제적 효율성의 차원에서 수도권 비대화가 논란이 되자 80년부터 2차 국토개발 계획을 뒷받침하는 '수도권 억제책'이 마련된다. 그 첫 단추가 82년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 그 후 몇차례 개정됐지만 이 법의 골자는 정비권역 설정을 통한 '토지이용규제'와 공장이나 학교의 증설을 막는 '총량규제', 정부기관과 대기업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는 '분산시책' 등 이다.

그러나 법만 만들었을 뿐 정부의 의지 상실로 법제화한 수도권 분산의 첫 시도는 실패로 결론난다. 2차 국토개발 기간 동안 수도권에만 2만8천개(절반이 무허가)의 공장이 들어섰고 6공화국의 주택 200만호 정책으로 일산·분당 등 서울 주변에 5개의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전국 택지개발 면적(220㎢)의 55%인 120㎢이 수도권에 조성됐다.

문민정부 이후 '지역균형발전'은 더욱 왜곡의 길을 걷는다. 당초 3차 국토계획의 목표는 '지방분산형 국토골격의 형성'. 하지만 신경제 5개년 계획을 발표한 신정부는 느닷없이 국토골격을 해양중심형으로 바꿔 버렸다. 부산·경남을 배려한 정치적 발상이다. 이에 따라 문민정부 5년 동안 지역 발전은 '목적지'를 잃게되고 수도권에만 사회간접자본의 40%와 제조업체의 55.1%, 인구의 45.3%가 몰리는 결과를 낳았다.

수도권 억제책과 함께 정부는 '지방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추진하게 된다. 그 첫 출발은 89년 발표된 '지역균형 개발법'. 이를 위해 문희갑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을 단장으로 국토개발연구원 등 정부 산하 9개 기관이 참여하는 지역균형발전기획단이 발족했다. 이 법안은 수도권의 공단조성 억제와 신규 산업단지의 지방유치, 이를 위한 각종 세제 지원, 지방의 정보 및 공공서비스 기능의 대폭 확충, 국가 사무와 공공기관의 지방이양, 지방은행 활성화 방안 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거창한 출발과는 달리 정권이 바뀔 동안 '지역균형개발법'은 국회에 상정조차 안됐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 법안은 '지역균형개발특별법'으로 이름만 바꾼 채 다시 추진 됐지만 이전 정권 때와 같이 또다시 용두사미식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한편 IMF 타격으로 지역경제가 더욱 몰락의 길을 걷게 되자 지난해에는 한나라당 지역의원들의 발의로 '지방경제살리기 특별조치법안'을 제출했지만 수도권 의원들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지역균형발전 특별법'도 현재로선 '말잔치'로 끝날 공산이 크다.

70년대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국토 계획에 참여했고 '지방경제살리기 특별법' 입안을 주도했던 김만제 의원은 "세계 어디를 가봐도 우리 같이 수도권만 비대한 곳이 없다. 관료와 정치인들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며 현실을 꼬집었다. 김 의원은 "3공화국부터 시작된 수도권 분산정책이 실패한 주 이유는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 때문이며 이들이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있는 탓"이라며 "강제성을 띠더라도 정부기관과 대기업부터 지방으로 옮겨야 한다. 포항제철을 보더라도 부작용은 없다"고 주장했다.

30년 동안 외쳐온 지역 개발 조치들이 '빛좋은 개살구' 꼴이 되는 동안 지방은 링거를 맞아야 움직이는 중환자 신세가 됐다. 또 응급 처방을 위한 대규모 투자 발표도 잇따랐지만 이 또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행된 사업이 없다. 90년 정부가 환동해권 중심 도시로 만들겠다며 인공섬과 신항만 개발, 동해권 철로 사업 등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던 포항 중심의 동해안 개발안이나 10년째 첫삽조차 뜨지 못한 채 정치권의 입씨름 대상이 되고 있는 위천국가단지, 이름만 '국제'자를 붙인 대구공항 사업이 대표적인 경우다.

또 근대화의 표본이 됐던 구미산업단지은 이제 퇴보의 위기에 내몰려 있는 처지다. 70년대 초 건설부가 계획했던 구미공단의 면적은 1천500만평. 그러나 현재까지 개발 면적은 528만평에 불과하다. 지난 10여년 동안에는 내세울 만한 입주 기업이 없는 것은 물론 앞으로 전망도 밝지 않다. 반도체로 대표되는 고부가가치 생산시설은 수도권으로 몰리고 섬유나 전자 등 단순 생산 기반은 동남아로 옮겨가면서 성장 한계에 맞닥뜨린 것이다. 구미상공회의소 곽공순 부장은 "교육이나 문화 등 주변 인프라 부족으로 고급 두뇌나 대기업 본사가 지역 상주를 기피하다보니 발전이 정체되고 있다"며 "지방 공단이라면 똑같이 겪는 상황으로 중앙정부의 정책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재협 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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