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차 문제

입력 2001-02-16 14:30:00

아래의 제시문은 성문법에 대한 불복종 운동을 옹호하고 있다. 불복종 운동은 항상 유효한 것은 아니다. 성문법에는 벗어난다고 해도 정의의 법, 즉 자연법으로는 옳다고 생각될 때만 유효하다. 모두가 옳다고 생각되는 법은 지킴으로써 공동체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지키지 않는 법은 그 효용가치가 없다. 법을 시대와 국민의 요구에 맞게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의 제시문을 참고하여 법에 대한 불복종 운동이 정당한 경우와 그 근거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 논술하라.

재판 결과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사자들에겐 그것이 제도적으로 종국적 선언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항상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 있는 법원에서만 해도 하루에도 수백 건이 선고되지 않는가.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 하나가 보도되면서 국민적 화제가 되었다. 비록 형량은 벌금 300만원에 불과하지만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은 위법'이란 제목을 뽑을 수 있었기에 일간지들의 1면을 장식했다. 대표적인 보수 언론은 나름대로 신이 난 듯했다. 대법원의 선고를 낙선 운동의 잠재적인 위법성이 현실적 불법 행위로 확인되었다는 듯 떠들었다. 새삼스럽게 준법의무와 절차적 적법을 거론하고, '악법도 법'이라 말한 적 없는 소크라테스까지 들먹였다. 그리고 다음부터 이런 불법 운동이 있어선 안된다고 점잖게 타이르기까지 한다. 그리하여 독자로 하여금 지난해에 이 사회를 온통 뒤흔들었던 낙선운동의 결말은 패배라는 식으로 유도한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사건의 핵심을 한참 벗어나 있다. 패자가 없음에도 터뜨린 빗나간 승리의 환호나 다름없다.총선 연대의 낙선 운동은 불법운동이 아니라 불복종운동이다. 초기 논의 과정에서 세운 원칙은 당연히 적법 운동이었다. 하지만 외면할 길 없는 정치개혁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선거법 위반 행위도 불사하기로 했다. 목적의 정당성은 이미 확인되었다. 유례없었던 국민 지지와 선거 결과, 그리고 후보자들의 적극적인 변명과 결사적 항전까지도 그것을 반증했다. 일본을 비롯한 해외의 반응은 또 어떠했는가.

총선 연대는 낙선 운동이 부분적으로 선거법에 위반된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고 행동으로 옮겼다. 우리가 처한 정치적 환경의 요구에 의한 양심의 결정과 실정법의 지시가 달랐지만 전자를 택했다. 그래서 낙선 운동은 법률상 확신범이요, 사회적으로 양심범이다.

불복종 운동이 불법과 근원적으로 다른 것은 불복종에 참여한 사람들은 처벌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결코 무죄를 구걸하지 않는다. 현재 총선연대 지도부에 대한 재판은 서울 지방법원에서 진행 중이지만, 피고인은 무죄를 주장하지 않고 변호인은 무죄를 변론하지 않는다. 다만, 당해 선거법 조항의 위헌심판 제청을 신청해 놓고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행동을 부당하게 옭아매고 있는 실정법이 바로 운동의 대상이며, 그 법의 개폐가 불복종의 또다른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이 유죄 판결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될 줄 알았고, 유무죄만을 놓고 본다면 마땅히 그러해야 옳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률상으로 정당했지만 현명하지는 못했다. 현실을 좀더 전향적으로 볼 수 있는 철학이 있었더라면 스스로 위헌 심판 제청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소신이 없더라도 진행 중인 재판에서 서울 지법의 제청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렸어야 했다.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될 점은 진정한 개혁적 시민운동은 불복종 운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시민 불복종은 시민운동의 유효 적절한 마지막 수단이다. 실정법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그 울타리 안에서 착실하고 얌전하게 맴도는 운동은 죽은 운동이다. 네거티브 운동이 아닌 포지티브 운동,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을 일삼지 않고 좋은 점을 찾아내고 칭찬하는 일은, 감시자로서 개혁적 시민단체나 운동가들이 할 일은 아니다. 제도적 모순이나 근심걱정 없는 유토피아적 사회에서 여유있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운동일 뿐이다. 우리에겐 아직 그런 한가로움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박원순과 서경석의 차이이기도 하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길러야 한다'는 소로의 말이 불복종운동을 포기할 수 없는 근거 중 하나다. 불복종으로 유죄가 선고되고, 그 뒤로 또다른 불복종이 이어지고, 유죄에 유죄가 쌓여 개혁은 이루어진다. 낙선운동을 4년에 한 번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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