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제1회 월드컵 대회가 1930년 우르과이에서 열렸다. 개막을 축하해야 할 우르과이 국민들은 기쁘보다 탄식이 흘러나왔다. 무엇보다 축구 종주국인 영국을 비롯한 유럽강국들이 끝내 외면한데 대한 낙담 때문이었다.
또한 으례히 주최국이 개막전을 가져야 하는 행운마저도 누리지 못한데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온 힘을 기울여 착공한 10만명 수용의 센테나리오 주 경기장도 완공을 보지못하게 되자 국민들은 허탈감에 빠진 것이다.
경기는 출전 13개팀들이 4개그룹으로 나눠 리그전을 치른 뒤 각조 상위팀이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라운드 로빈방식으로 진행됐다. 첫무대는 1조의 프랑스와 멕시코의 격돌로 흥미를 끌었다.
전반 10분경 상대방 골문을 향해 질주하던 멕시코 메히야가 슛을 작렬하는 순간, 메히야의 축구화가 프랑스 골잡이 데포의 턱뼈를 부러뜨리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선수교체의 룰이 없었던 당시로서는 나머지 열사람이 뛰어야 했다. 프랑스 감독은 수비수인 샹트렐을 골키퍼 대신 기용했고 순식간에 4골을 뽑아내 서전을 장식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승리기쁨도 잠시. 다음 상대는 2년전 파리 올림픽에서 준우승한 강호 아르헨티나였다. 양팀은 일진일퇴를 거듭해 무승부 가능성이 커졌으나 종료 10분을 남기고 운명은 갈렸다.
프랑스 골문 20m지점서 얻은 프리킥으로 아르헨티나는 선제골을 기록했고 절망에 빠진 프랑스는 남은 6분만에 실점의 만회기회를 포착했다. 텅빈 아르헨티나 문전을 향해 피넬이 센터링한 골을 링기가 잡아 골문을 향해 찰려는 순간, 레고주심은 경기종료 호각을 불어 버렸다.
아르헨티나 선수들과 관중들은 얼싸안았고 격앙된 프랑스 응원단들은 경기장으로 난입, 항의소동을 일으켰다. 당황한 주심은 곧 자신의 잘못을 인정, 퇴장한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불러내 경기를 재개했지만 프랑스는 끝내 만회기회를 잡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의 다음 상대는 멕시코. 그런데 결전을 앞두고 아르헨티나 핵심선수인 페레이라 선수가 학기말 시험을 치러야 한다며 귀국해 버리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아르헨티나 감독은 급히 본국에 연락, 고교생인 스타빌레를 투입했다.
그런데 스타빌레는 멕시코전에서 헤트트릭(3골)을 기록하며 6대3으로 멕시코를 꺽어버리는 대활약을 펼쳤고 칠레와의 경기에서도 3대1로 이겨 일약 영웅이 됐다.브라질은 2조에서 볼리비아를 4대0으로 눌렀으나 유고전에서는 1대2로 패배, 준결승진출권을 유고에 넘겨주었다. 우르과이는 3조예선에서 페루와 루마니아를 1대0과 4대0으로 잠재우고 조1위를 확보, 준결승전에 안착했다.
4조에서 이변이 생겼다. 축구도입이 불과 10년이 채 안된 미국은 유럽에서 활약하던 선수들로 팀을 구성, 벨기에와 파라과이를 각각 3대0으로 물리치고 준결승전에 진출한 것이다. 결국 패권은 아르헨티나와 유고, 우르과이, 미국의 대결로 압축됐다. 이주녕(축구평론가)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