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천국 서울-정보 생산·유통 서울공화국 독점

입력 2001-02-15 14:12:00

서울은 정보의 천국이다. 온갖 정보가 서울 바닥에서 흘러넘치며 춤을 추고 있다. 서울 사람들은 그래서 남들보다 한 발 앞선 정보를 통해 일확천금을 벌기도 하고 하루아침에 알거지 신세다. 주식투자를 하고있는 김모씨는 지난 해 여름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돼있던 한 건설사가 곧 해외업체에 매각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여의도증권가에 근무하고있는 친구로부터 이 정보를 듣고 곧바로 주당 800원을 오락가락하던 유원건설주식 3만주를 샀다. 증권거래소에서도 이같은 정보를 입수, 공시했다. 유원건설은 곧이어 상한가행진을 계속, 3천원대까지 치솟았고 김씨는 6천만원 이상을 벌었다.

정 반대 얘기. 지난 해 동해 보물선발견 소식이 보도되면서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가있던 동아건설주가 갑자기 상한가를 쳤다. 300원까지 떨어졌던 동아건설은 한달동안 상한가를 기록, 3천265원까지 올랐다가 결국 거짓정보로 드러나 2월초 800원으로 떨어졌고 증권거래소는 지난 4일에야 거래를 정지시켰다. 물론 허겁지겁 달려들었던 사람들은 쪽박을 찼다.

국회의사당과 여야 정당, 증권거래소와 주요 증권사가 몰려 있는 여의도증권가에는 매일 '찌라시'라고 불리는 십여종의 사설 정보지들이 유통되고있다. 여기에는 정치권 실력자들의 동향은 물론 기업동향과 연예인 스캔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정보들이 망라돼 있다. 이같은 사설정보지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수준이 대부분이지만 깊숙한 고급정보도 적지않다. 권력핵심부와 여야 정치권 인사들, 대기업 총수들의 사생활은 물론 언론기관의 내부정보까지 노출되고있다. 따라서 이들 정보는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여의도는 '정보사냥꾼'들로 북적거린다. 유력 정치인의 참모와 국정원과 경찰의 정보팀, 대기업의 정보맨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정보를 교환한다. 심지어 지방의 기관장이나 유지들은 수시로 서울을 왕래하면서 그같은 정보를 얻기위해 안달하고있다. 기업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여의도증권가에는 의혹사건이 터질 때마다 예외없이 리스트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돈다. 대전법조비리사건이 터졌을 때는 '이종기 리스트'가 나왔고 옷로비사건 때는 최순영 이형자리스트가 나왔다.

이같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서울에 있는 언론사들의 입지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 서울에는 공중파방송 3사를 비롯,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11개 종합일간지, 한국경제 등 5개 경제지와 영자지, 외신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있다. 그들은 중앙의 정보를 독점하며 중앙의 논리를 대변하는 데 앞장설 뿐이다. 신생신문사도 서울에서 발행해야 '중앙일간지'로 대접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방은 정보의 사각지대다. 대구에 있으면 촌놈되기 십상이다. 특히 지방에 있는 정보통신(IT)벤처기업들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면 서울로 옮겨간다. 대구에서 창업해 께비메일로 성가를 높인 나라비전의 경우 아예 본사를 서울로 이전했고 도원텔레콤도 본사만 대구에 남겨두고 개발실과 마케팅부문은 서울로 옮겼다.

웹에이전트 솔루션 등을 개발하는 지엔비커뮤니케이션도 마케팅부문은 서울에 두고있다. 지엔비커뮤니케이션의 이경환 사장은 대구에 있는 개발인력 일부도 조만간 서울로 보내기로 했다.

"대구에 있으면 인터넷이나 솔루션쪽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대구에서 연구개발을 한다고 해도 서울에서 모든 비지니스가 이뤄지고있고 업그레이드 같은 애프터서비스도 지원해야 하는데 대구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사정이 이러니 지방을 떠나는 벤처들을 탓할 수도 없다.

그래서 지방대학출신의 우수한 인재들이 아예 서울에서 창업을 한다. '경북대학교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출신 기업가모임'(경전련)회원 80여명 가운데 대구·경북에서 창업한 사람은 5명이다. 85%이상이 서울과 경기도에서 벤처기업을 하고 있다. 네트워크시스템과 장비를 개발하는 '엠아이넷'의 이학준 사장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창업할 때부터 대구서 한다는 생각은 하지않았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마이크로소프트 코리아 등 외국업체가 모두 서울에 있어 기술지원이나 부품구매를 제대로 받기위해서는 서울에 있어야하고 주변에 있는 유사업체와의 정보교환도 가능하다"면서 "지방은 (정보)인프라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지방의 정보인프라에 대한 불신은 주가지수선물(KOSPI 200)의 선물거래소 이관논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선물거래소는 지난 99년초 부산에서 개장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여의도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고있던 주가지수선물을 이관받지 못해 기형적 운영을 하고 있다. 주가지수선물은 증시가 활황이던 지난 99년말 기준으로 약 1천700만 계약에 거래대금은 821조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한국선물거래소와 부산시는 부산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주가지수선물을 선물거래소로 이관돼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이에 정부는 지난 해 10월 현물과 선물의 분리방침을 재확인하고 주가지수선물을 2004년 1월부터 선물거래소로 이관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증권거래소와 증권거래소 노조는 물론 일부 시민단체들까지 주가지수선물의 부산이관 결정은 경제논리가 아니라 '부산민심을 겨냥한' 정치논리에 따른 것이라며 강력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서 2004년 이관은 순조롭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이관반대 주장에는 '지방에는 정보인프라가 없다'는 인식이 뿌리박혀 있다. 세계시장을 무대로 촌각을 다투는 정보전쟁을 벌이는 주식선물시장을 지방에 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주가지수선물의 선물거래소 이관여부는 지방에 대한 정보인프라확충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정부는 지난 9일 김대중 대통령과 안병엽 정보통신부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초고속기간통신망 완공행사를 갖고 "전국의 읍·면단위까지 광케이블로 연결하는 '정보고속도로'를 지난 해 12월 완공했다"고 발표했다. 이제 대도시 뿐만 아니라 읍·면지역에서도 초고속 인터넷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앞으로는 지역간 정보화격차가 크게 해소될 것이라는 것이다. 초고속정보통신망은 21세기 정보화사회의 핵심인프라다. 이를 통해 차별없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고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생활이 보편화할 것이란 정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초고속광케이블이 전국을 '초단위생활권'으로 연결한다고해서 서울과 지방간의 정보격차가 해소될 수 있을까. 서울과 수도권으로 집중된 정보를 온 국민이 공유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보통신부의 오상진사무관은 "광케이블이 깔렸다고 해서 초고속인터넷이 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균형적인 지역발전을 위해 전국에 초고속망을 깔았지만 수요가 없는 지방에까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하는 것은 우리 국력에 비해 아직은 낭비"라고 말했다. '정보고속도로'는 말 그대로 기반시설(인프라)일 뿐 정보지식사회의 실현이나 정보격차를 해소해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정보통신부의 다른 관계자는 "정부는 기업, 민간 부문에서 실질적인 정보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첨단기술과 다양한 서비스 개발, 정보보호 기반 구축 등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있다"고 말했다.

지난 해 2월18일 저녁 서울 여의도 지하공동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공동구내 일부 전력선과 광케이블이 불에 타는 적은 피해를 입었지만 일부 증권사와 은행의 전산망이 완전히 마비, 거래 차질 등 수십조원의 피해를 입었다. 국민은행과 동부증권 등 일부 금융기관 지점은 영업 중단 안내문을 써붙이고 아예 문을 닫았다. 다소 다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이처럼 정보인프라의 서울 과집중은 예기치못한 사소한 사고에도 국가 전체의 정보 기간망을 올스톱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정보는 서울에서 지방으로, 지방에서 서울로 쌍방으로 흘러야한다. 서울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위해서는 취약하기 짝이 없는 지방의 정보인프라를 확충하지 않으면 안된다. 중국이 지난 10여년간 사회간접자본은 물론 정보인프라를 상하이에 집중적으로 투입해 베이징을 능가하는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동시에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주저없이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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