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는 교육과정에 따라 편찬된 일종의 '경전'과도 같다. 교사에게는 학생 지도의 지침이, 학생에겐 학습 내용의 중심이 된다. 더구나 교육과정이 입시제도와 밀접한 우리 사회에서는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역사는 상처투성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지화 정책이 반영됐고, 광복 이후엔 미국 교육사조가 도입됐다. 70년대 이후에도 일제 식민지 체질과 미국의 실용주의 교육 영향이 너무 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교과서 연구는 주로 교육부와 교육연구기관에서 했을 뿐 민간에 의한 연구는 부진했던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 비해 내용면에서 조직·체계가 약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부가 '21세기의 새로운 인간형 창조'라는 기치 아래 닻을 올린 7차 교육과정에 따라 획일적인 국정 교과서의 비율을 낮추고 다양한 검인정 교과서를 늘리려는 새로운 시도도 그런 연유로 기대를 걸게 했다.
올해 중학교 1학년부터 시작되는 7차 교육과정의 검정(2종) 교과서 채택을 둘러싸고 졸속·비리 등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는 보도는 실망감을 안겨 준다.
벌써부터 출판사 직원들의 금품·향응 제공 로비 등 돈거래로 얼룩지고, 일본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베끼는가 하면, 대학원생이나 출판사 직원에게 대필시킨 대학교수가 버젓이 저자로 둔갑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니 기가 막힌다.
출판사들이 연구비 투자에 인색해 검정 기한이 임박해서야 연구·집필에 착수하는 일이 비일비재할 정도로 제작단계부터 부실하고, 대필·표절·모방이 관례화돼 있다고도 한다.
게다가 상당수의 교사들에게마저 '우리도 가욋돈이나 쓰자'는 분위기는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교과서 채택을 싸고 '출판사·대리점·학교의 3각 불륜'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지 않은가.
다양한 검인정 교과서를 사용해 시대의 변천에 발을 맞추는 것은 경쟁력 확보의 지름길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학생들의 지적 능력과 전인격적 인성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검인정 교과서가 부실하게 제작되고, 돈거래로 채택되는 분위기라면 우리의 내일은 어두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과서는 교육 권위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므로 새 교과서는 당연히 새로운 권위를 만들 수 있어야만 하리라고 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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