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箱을 빌려 얘기한 존재의 진실

입력 2001-02-14 00:00:00

상상이나 가공의 인물을 맞닥뜨리는 일 못지 않게 소설에서 역사적 인물과의 조우는 흥미롭다. 그 등장인물이 단절된 신화의 영역에 속하거나 전설 또는 설화에서나 존재했을 법한, 행적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없는 신비의 인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부류의 인물을 소재로한 신작소설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화제의 소설은 김연수씨의 '꾿빠이, 이상'(문학동네). 1930년대 활동했던 천재 작가 '이상'에 대한 연구와 고증을 바탕으로 이상과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실제 기록과 그의 작품, 한편으로 가짜 참고문헌이나 가상적 기술, 상상의 인물들을 동원해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을 소재로 한 소설이지만 전기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허구와 사실경계 넘나들어

'꾸ㄷ빠이, 이상'의 주인공이자 중심화자는 2000년대 현재를 살아가며 이상의 흔적을 추적해가는 세 명의 인물들로 '데드마스크' '잃어버린 꽃' '새' 등 세 편의 이야기에 화자로 각기 등장한다. 이상이 죽은 후 제작되었으나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데드마스크를 둘러싼 사건에 말려들게 된 출판사 기자, 이상이 사망한 도쿄를 배경으로 이상 추종자였던 무명시인이자 아마추어 이상 연구가, '오감도 시 제16호 실화'의 진위여부를 둘러싸고 이상연구에 몰두하는 재미교포 출신 학자가 그들.

주인공들은 퍼즐을 짜맞춰가듯 이상의 비밀을 추적해나가면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이상'이라는 천재 작가는 김해경(이상의 본명)이 소설을 쓰듯 창조해낸 인물, 일종의 가면이었으며 이상의 작품은 그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것. 즉 김해경은 '천재 이상'이란 가면을 쓰고 자신의 삶을 담보로 도박을 했다는 사실에 도달한다는 줄거리다.

*李箱은 김해경의 가면일뿐

작가 김씨는 이상이 남긴 비밀을 추적해가는 지적 추리의 세계로 독자를 이끄는 동시에 진짜와 가짜, 실재와 허구에 대한 존재론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작가는 무한한 어떤 것 앞에서는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하지, 진짜(실재)와 가짜(허구)의 구분은 사라진다는 주장을 편다. 진짜와 가짜 사이에 스펙트럼처럼 퍼져 있는 존재의 진실을 탐색하는 이 소설은 대상에 대한 다면적 해석의 목소리, 바로 열린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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