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대보름 놀이노래 놋다리 밟기 소리
"학교에서 놋다리밟기 했겠네?" "놋다리 밟기는요 밟혔지요!" 놋다리밟기를 전승하고 있는 여고 출신 수험생을 면접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밟혔다니?!" "밟혔지요 그럼! 우리가 언제 한번이라도 밟아본 적이 있어야지요!"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다.
공주로 뽑힌 학생만 밟고 다른 학생들은 계속 엎드려 밟히기만 하는 것이 요즘 놋다리밟기 전승의 실상이다.
여성들이 대보름날 밤에 텃논이나 광장에 모여서 각종 놀이를 하는데, 특히 앞사람의 허리를 붙잡고 길게 엎드린 위로 공주가 밟고 지나가는 놀이를 흔히 놋다리밟기라고 한다.
이 놀이는 안동에서 최근까지 전승되고 있는데, 전설에는 공민왕이 안동으로 몽진할 때 안동부의 여인들이 엎드려서 왕비인 노국공주를 밟고 지나가도록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말일까? 놋다리밟기 노래를 들어보자.
어느 윤에 놋다리로/ 청계산에 놋다릴세
이 터전이 뉘 터이로/ 나라임의 옥터일세
이 기와가 뉘 기와로/ 나라님의 옥기왈세
문답형식을 취한 교환창이므로 이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일관되어 있다.
들머리에서는 놀이를 시작하면서 어느 곳의 놋다리인가, 누구의 터인가, 누구의 기와인가 하는 것을 묻고 답한다.
'터전'은 놀이하는 현장을 말하므로 이해가 되지만 '기와'는 왜 등장할까. 기와는 여성들이 허리를 잡고 엎드린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서, 그 모습을 기와 지붕의 추녀 곡선처럼 인식하여 기와밟기라고도 한다.
무슨 갓을 쓰고 왔노?
최근까지 이 놀이를 전승해 온 안동 금소리에서는 "이 군사는 누 군사로/ 이 군사는 옥군살세" 하는 대목이 있다. 나랏님의 옥기와는 나라님의 옥터나 나랏님의 옥군사와 같은 맥락에 있다.
이 군사는 군인이 아니라 놀이하는 사람을 나타낸다.
놋다리밟기 하는 사람을 기와나 군사에 비유하여 옥기와나 옥군사로 미화한 것이다. 그럼 놋다리는 무엇을 뜻하는가. '어느 윤에'나 '청계산'이나 모두 장소를 나타낸다.
따라서 놋다리는 사실상 논따리로 발음되는데, 이는 논또가리 곧 논뙈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놀이를 하는 텃논은 나라님의 옥터로서 신성한 곳이며, 여기서 놀이를 하는 여성들은 옥군사나 옥기와처럼 신성한 사람임을 말하는 것이다.
기 어데서 손이 왔노/ 경상도서 손이 왔네
무슨 꼬깨 싸여 왔노/ 어깨 꼬깨 싸여 왔네
?대 칸을 밟아 왔노/ 쉰대 칸을 밟아 왔네
이어서 손님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가 하는 것을 묻는 질문이 계속된다.
손님은 경상도서 왔으며 어깨에 무동을 타듯 꼬깨(꽂개의 방언)를 타고 주위의 호위를 받으면서 50여 칸을 밟아 왔다고 한다. 손님의 출신지만 드러났지 그 정체는 아직 모호하다.
손님의 치레가 노래되면서 그 정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무슨 바지 입고 왔노/ 지죽바지 입고 왔네
무슨 보선 신고 왔노/ 타래보선 신고 왔네
무슨 행전 치고 왔노/ 자주행전 치고 왔네
무슨 신을 신고 왔노/ 봉만화를 신고 왔네
지죽바지를 입고 타래버선을 신고 자주행전을 치고 봉만화를 신은 인물은 한 마디로 귀한 인물이다. 바지나 버선이나 행전이나 신발이 모두 값진 것이다.
다른 노래에서는 지죽바지 대신에 '물명주 고주바지'라고도 하고 타래버선 대신에 '삼승버선'이라고도 하며, 봉만화 대신에 '육날미틀'이라 하는데, 구체적 표현은 달라도 귀한 것이라는 점에서 한결같다.
무슨 갓을 쓰고 왔노/ 통영갓을 쓰고 왔네
무슨 망건 쓰고 왔노/ 외올망건 쓰고 왔네
무슨 풍잠 달고 왔노/ 옥각풍잠 달고 왔네
무슨 갓끈 달고 왔노/ 수정갓끈 달고 왔네
무슨 도포 입고 왔노/ 직령도포를 입고 왔네
외올망건을 쓴 위에 통영갓을 쓰고 옥풍잠을 달고 수정갓끈을 한 데다가 직령도포를 입은 남성이라면 영국신사 뺨칠만한 멋쟁이 한량 차림새가 분명하다. 한결같이 유명 브랜드에다 일류 메이커다.
갓끈과 풍잠의 재질은 지체를 상징한다.
아무나 돈이 있다고 해서 수정으로 갓끈을 맬 수 없고 옥으로 풍잠을 달 수 없다. 거기다가 직령도포는 관복이다.
그러므로 이 손님은 대단히 지체 높은 남성으로서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인물임이 틀림없다. 여성들이 이처럼 멋진 남성을 맞이하는 놀이를 펼치는 것은 현실적인 사랑의 기대와 함께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손이 시러 어이 왔노/ 양모토시 끼고 왔네
입이 시러 어이 왔노/ 모개 쪽을 물고 왔네
물이 깊어 어이 왔노/ 인다리를 밟아 왔네
무슨 말을 타고 왔노/ 백대말을 타고 왔네
정체를 확인한 뒤에 다시 오는 사정에 대하여 묻고 답한다.
춥고 물이 깊지만 양모토시를 끼고 모개 쪽을 입에 물고 사람다리를 밟으며 백말을 타고 왔다. 이 손님이 오는 계절은 겨울이다.
손이 시리고 입이 시린데 어떻게 왔느냐 하고 안부를 묻는 데서 잘 드러난다. 정월 대보름 놀이이므로 당연히 겨울철이다.
따라서 찾아온 손님이 추위에 어떻게 왔는가 안부를 묻게 마련이다.
물을 건널 때는 인다리를 밟고 오고, 백말을 타고 온 그는 과연 누구일까? 전설처럼 노국공주는 분명 아니다. 노래의 어느 대목에도 공주 관련 내용이 없으려니와, 손님의 치레를 보면 분명히 갓을 쓰고 말을 탄 남성이다. 더군다나 안동 외의 다른 고장에서는 이 놀이를 하더라도 공주를 뽑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한 사람만 밟지 않고 모든 사람이 차례로 엎드렸다가 차례로 밟아나가는 아주 민주적인 놀이를 한다.
그때 무슨 행차가 지나갔노?
결국 밟고 밟히는 민주적인 놀이가 공민왕의 안동 몽진을 계기로 안동시의 것만 '밟기'에서 '밟히기'로 바뀐 것이다. 공민왕이 1361년 12월에 안동에 와서 이듬해 2월까지 머물렀는데, 객지에서 무료하던 노국공주가 보름날 놋다리밟기를 구경하다가 흥이 나서 스스로 놀이에 참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원래는 누구나 밟고 밟히던 놀이인데, 공주는 신분상 엎드리지 않고 밟기만 하게 되었고, 이것이 한 관행이 되어 안동에서는 해마다 공주를 뽑아서 공주만 밟기를 하게 된 것이다. 자연히 다른 사람은 엎드려 밟히기만 했다.
왕조시대의 제왕적 권위가 밟기를 밟히기로 바꾸어 놓은 셈인데, 불행하게도 그 권위는 지금도 계속된다. 지난 1월 15일 미대사관 옆 시민공원에서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하던 시민단체 회원들이 전경의 군홧발에 짓밟히고 3 시간 동안 전경차 안에 감금되었다가 엉뚱한 곳에 내팽개쳐졌다.
이 과정에서 백발의 문정현 신부도 안경이 깨지고 왼쪽 늑골에 금이 갈 만큼 다쳐 실신까지 하였다. 당국은 "대통령이 지나가 불가피하게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하였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국민은 여전히 공권력에 밟히고 있다.
제왕적 권위가 민주적인 시위를 폭력진압의 대상으로 만들고 노신부조차 빙판에 내동댕이친 셈이다. 우리는 지금 놋다리밟히기를 하면서 놋다리밟기를 하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뽑힌 사람은 밟고 뽑아준 사람은 외려 밟히는 모순이 극복되지 않는 한 민주사회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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